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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01 09:45 수정 : 2014.10.21 10:11

강태식 소설 <29화>



중얼중얼, 중얼중얼…….

어디선가 죽음처럼 흘러나오는 망자의 혼잣말! 누가 그의 영혼을 고독의 늪에서 헤매게 했는가? 오랫동안 운명이라는 사슬에 묶여 스스로를 저주해왔다. 이제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와 계약을 맺으리니. 증오의 화염이여, 내 몸의 피가 마르고 뼈가 녹을 때까지 활활 타올라라. 올여름 당신의 심장마저 얼려버릴 거대한 공포가 다가온다. 방심하지 마라. 어둠의 세계에서 돌아온 그가 오늘 당신을 초대한다. Coming Soon!

으스스했다. 그때부터 대걸레는 손거울을 가지고 다녔다. 시간 날 때마다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나 안 비치나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비치면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안 비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조금쯤 투명해진 듯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불안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다. 몸무게는 계속 반 토막 나고 있었다. 세상이 점점 미워졌다. 사람들도 미웠다. 대걸레는 어느새 염세적인 인간으로 거듭나 있었다.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물을 바라볼 때도 회의적인 생각만 들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모두 부조리해 보였다. 현상 일반에서도 보편적인 타당성을 찾을 수 없었다. 강가에 뒹구는 조약돌이 오히려 합목적성을 획득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사르트르의 《구토》에 보면, 주인공 로캉탱이 조약돌을 손에 쥐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장면이 나와요.”

어쩌면 모든 게 거짓일지도 모른다. 부조리한 세계는 허구다. 따라서 세계는 내 의지가 빚어낸 하나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 역시 실체가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고……. 거기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거다. 꿈을 꾸고 있다고 인지하는 이 자아성마저도 사실은 실체가 아닌 꿈이다. 외부에 대한 감각도, 세계를 인지하는 오감도, 자아에 대한 인식도 실존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없다. 어쩌면 자아가 대결해야 할 세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자아는 세계의 반작용이다. 따라서 자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고 세계라는 거대한 타자가 하나둘씩 소거된다.

“이건 장자 철학의 염세주의 버전.”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대걸레의 내부에서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잎을 달고, 열매를 맺으면서 무성하게 자라났다. 자살은 가장 형이상학적이면서 철학적인 명제다. 이 비슷한 말을 프랑스의 소설가 카뮈가 했다. 과연……. 대걸레는 고개를 끄떡였다. 몇 번인가는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자살을 남몰래 시도해본 적도 있었다.

결국 대걸레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쟀다. 3그램이었다.

“제 몸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무게였어요.”

그 3그램마저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렸다. 사표를 쓴 다음 날이라 정확하게 기억한다. 체중계에 올라가도 더 이상 몸무게는 나가지 않았다. 그날은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무슨 기념일 같았다. 또 그날은 우리의 대걸레가 몸무게 제로의 인간인 붕으로 재탄생한 날이기도 했다.

이후로도 대걸레는 이곳저곳으로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회사생활을 계속해나갔다. 하지만 과정과 기간이 조금씩 다를 뿐, 어딜 가나 쾅 이마에 낙인이 찍혔고, 척 가슴에 푯말을 두르고 다녔다. 그러다가 1년 전부터 도서 외판직에 몸담게 되었다. 발로 뛰어다니는 일이라 육체적인 피로는 예전의 두 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일정한 공간 안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무직보다는 훨씬 적성에 맞았다. 온종일 고객들만 상대했다. 가판을 펴거나 가정방문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판매직이기 때문에 고객들이라 해도 대개는 한번 보고 말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부담 없이 상대할 수 있었다. 입바른 소리를 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이 정도는 초등학교 수준의 교양입니다. 선생님께서 오늘 이 책을 만난 것은 어쩌면 무지와 몽매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자녀들에게는 존경받는 부모로, 타인들에게는 지성과 감수성의 귀감으로 새롭게 거듭날 것을 요청하는 하늘의 절박한 계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지금까지 책과 벽을 쌓고 살아오셨다면 이제 그 벽을 허무십시오. 메말랐던 지난날의 삶을 청산하고, 저 멀리 뒤처져버린 교양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 전집만큼은 꼭 구입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마케팅 전략이 오히려 잘 먹힐 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객의 성향에 따라서 싸움이 붙거나 구타를 당할 때도 있다.

“힘들지 않아?”

“힘들죠.”

하지만 유령인간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날에 비하면, 매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문전박대를 일상다반사처럼 당하는 지금이 오히려 천국처럼 느껴져요, 대걸레는 수줍게 고백한다. 혼잣말도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었다.

“힘들어도 지금이 좋아요.”

빗물처럼 애잔하게 젖어드는 대걸레의 음성을 뒤로한 채 나는 다음 질문을 계속했다.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됐어? 영감님이 꼬셨어?

“그걸 꼬셨다고 해야 하나?”

아지트에 입회하게 된 동기는 스마일 영감님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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