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30화>
“야! 너 지금 거기 어디야? 당장 나왓!”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정도 많고 마음도 따뜻한 영감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분들도 모두 따뜻하게 대해줘요.”
그래서 대걸레는 하루 업무가 끝나면 매일 아지트로 출근한다. 바닥에 깔린 매트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마음의 평안과 영혼의 안식을 누린다. 이를테면 대걸레에게 있어 아지트란 충전소 같은 곳이다. 공기 속에 촉촉하게 배어 있는 곰팡내를 폐 속 깊숙이 호흡하는 순간, 몸도 마음도 어느새 사슬에서 풀려난 듯 편안한 기분에 젖는다. 세상살이에 소진된 에너지가 천천히 차오르는 느낌이다. 무슨 짓을 하건, 어떤 말을 하건, 그걸 갖고 타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딱 한 번 식칼 아줌마에게서 태클이 들어온 적은 있었다.
“젊은 놈이 뭐라도 해라.”
그래서 요즘 대걸레는 거짓말 훈련을 한다.
“하면 할수록 느는 게 거짓말이다.”
일리 있는 말 같았다. 식칼 아줌마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거짓말을 단련하면 몸무게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과연, 고개를 끄떡이며 대걸레는 훈련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혼자서 같은 거짓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늑대가 나타났다!”
바로 속이 뒤집혔다.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걸 모두 토했다. 하지만 대걸레는 포기하지 않았다. 죽을 각오로 훈련에 매달렸다.
“늑대가 나타났다!”
처음부터 목표가 너무 높았는지도 모른다. 준비도 없이 끝판왕 늑대에게 도전했다. 아무리 단련해도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러던 중 스파링 파트너가 나타났다. 나이는 대걸레보다 많았지만 사람이 허술하고 만만해 보였다. 부탁하면 들어줄 것 같았다. 그래서 부탁했다.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주실래요?”
어느 날, 대걸레가 나에게 와서 이런 부탁을 했다.
“거짓말 훈련에는 상대가 필요해요. 혼자서 해봤는데 실력이 늘지 않더라고요.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단련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하면 할수록 점점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보다 10년은 어려 보이세요.”
동안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다. 웩!
“존경합니다.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
누구에게도 존경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는 몸이다. 나처럼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이 이 지구 상에 존재할 리 없다. 웩!
“정말 잘생기셨네요.”
못생긴 얼굴은 아니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잘생기지 않았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웩!
대걸레도 대걸레지만 나도 대걸레 못지않게 힘들다. 대걸레의 스파링 파트너를 하고 있으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꾸역꾸역 끄집어내서 되새김질하는 기분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는다. 나도 참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네, 이런 회의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 점점 지쳐간다. 과연 대걸레의 스파링 파트너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외판원이라는 일이 어차피 발로 뛰어다니는 직업이거든요. 하루에도 수십 킬로미터씩 이동해요. 그 거리를 월 단위로 계산해서 산출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가 나올 거예요. 미 대륙을 횡단한 사람. 지구를 일주한 사람. 달나라를 왕복한 사람. 고참 중에는 목성 궤도에 진입한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많이 팔아야 한 달에 서너 질 정도. 한 질이나 두 질 팔고 마감하는 게 보통이죠. 물론 실적이 없는 동료들도 수두룩해요. 그런 달에는 수입도 없어요. 매달 식비며 교통비를 자비로 해결해야 하니까 오히려 돈을 내고 회사에 다닌다고 봐야죠.
그래도 다녀요. 자기 돈 써가면서 꼬박꼬박 정시에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야근은 일상이고, 밥 먹듯이 휴일을 반납해요. 왜 그러는지 아세요?
“일을 안 하면 뒤처지니까 그런 거 아닌가?”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쉬고 있으면 도태된다, 놀기만 하면 밀려난다, 이런 불안 때문인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사실 좀 밀려나고 뒤처진다 해도 인생이 망가지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도 그걸 알아요. 움츠렸다 뛰면 더 멀리 뛸 수 있다는 걸, 비워야 채울 수도 있다는 걸 말이에요. 하지만 막상 쉬면 그걸 못 해요. 움츠리는 게 안 돼요. 계속 뛸 생각만 하죠. 비우는 건 아까워서 못 해요. 물론 머리로 아는 거랑 피부로 직접 느끼는 거랑은 하늘과 땅 차이겠죠. 일을 안 하니까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일을 하는 건 도태될까 봐 그러는 게 아닌 거죠. 위에서 찍어 누르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옆에서 밟고 올라가는 생활 전선에서도 어차피 도태될 인간은 착착 도태되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쪼이고 깨지고 밟힐 때는 불안한 줄 몰라요. 그러다가 손에서 일을 놓으면 그때부터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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