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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06 10:04 수정 : 2014.10.21 10:13

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강태식 소설 <31화>



“그런가?”

그래요. 그렇게 길들여졌으니까요. 대한민국에서는 쉬면 안 된다고 가르쳐요. 집에서 놀면 쓰레기 취급을 당하죠. 준비 중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멀리 뛰려고 움츠려 있거나, 채우기 위해서 비워놓으면 한심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해요. 뛰라고, 달리라고, 그러지 않으면 밀리고 뒤처진다고, 어릴 때부터 국민들을 채찍질하는 게 이 나라예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해요. 과정 같은 건 당사자의 일이에요. 결과가 없으면 무능력한 인간인 거죠. 이 나라 국민들은 그렇게 살아왔어요.

그래서 자기 돈 들여가면서 직장에 다니는 거죠. 뛰라고, 달리라고, 누가 계속 채찍질하니까요. 스트레스가 있어야 숨을 쉴 수 있어요. 프레스를 받아야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러니까 이 나라 국민들에게는 조직과 회사가 산소호흡기쯤 되는 거죠. 혼자 있으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 해요. 조직을 나오는 순간 머릿속에 장착된 시스템이 경보를 울려요.

무리로 복귀하시오. 무리로 복귀하시오.

조직이 짜놓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고, 회사가 내리는 지시에 따라 일하는 걸 좋아해요. 머리 같은 건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게 편해요. 개성적인 인간이 되면 이 나라에서는 아무튼 굉장히 피곤해요. 같은 걸 시켜 먹는 게 미덕이고, 남들을 따라 하는 게 유행이에요.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태어나면서부터 죽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는 걸 직접 보면서 살아왔어요. 그러니까 잘못된 게 하나도 없는데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그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거예요.

“잘 아네.”

숲에서 나오니까 숲이 보이는 거죠.

“너, 숲에서 나왔어?”

나왔다고 생각해요. 아지트에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쯤에서 대걸레의 이야기는 다시,

“야! 너 지금 거기 어디야? 당장 나왓!”

스마일 영감님을 만나고, 식칼 아줌마와 구둣주걱 아저씨라는 나머지 멤버들과 합류하기 한참 전으로 돌아간다.

그날도 대걸레는 서류가방 가득 안내책자와 팸플릿을 넣은 채 숨은 고객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날씨는 최악이었다. 초복이라 아침부터 푹푹 쪘다. 정오가 되자 머리 꼭대기에 걸린 태양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건물도 가로수도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서 부채질만 하고 있어도 줄줄 땀이 흘러내리는 그런 날씨였다.

헉, 헉, 그늘만 찾아서 피해 다녔는데도 어느새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핑, 하늘이 도는 것 같았다. 대걸레는 잠깐 펜스 너머의 도로로 시선을 옮겼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바닥에서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숨통이 막히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바로 그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초대도 안 했는데 불쑥 들이닥쳤다. 배에서 신호가 왔다. 덥다고 아침부터 다량의 빙과류를 무분별하게 섭취한 게 실수였다. 몸속에 계신 그분께서 바깥세상으로 성큼 뛰쳐나오려 하고 계셨다. 야, 내보내줘! 항문에 힘을 주면서 버텼다. 이대로는 얼마 못 버텨. 힘에 부친 듯 항문이 절규하고 있었다.

대걸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철역도, 공공기관의 건물도, 하다못해 그 흔한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전문점도 보이지 않았다.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하나도 없는, 화장실 전멸 구역이었다. 주위에는 온통 늘씬하게 쭉쭉 뻗은 초고층 빌딩뿐이었다.

비록 한때지만 대걸레가 몸담았던 대기업도 이렇게 생긴 초고층 빌딩에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 빌딩의 구조나 관리 시스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대걸레는 자신의 강점을 십분 살리기로 했다. 사무실 빌딩을 공략하면 실적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공략 포인트를 거기로 잡았다.

정문은 언제나 철통 경비 태세다. 기본적으로 카드의 바코드를 읽어내는 인식기가 설치되어 있다. 그걸 통과해야만 비로소 건물 내의 진입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회사에서 고용한 경비원이나, 사설 경비업체에서 파견된 전문 인력이 항상 정문에서 대기 중이다. 축구로 치면 이탈리아 스타일이다. 이중, 삼중의 완벽한 빗장 수비 형태다. 하지만 이 경비 시스템에도 빈틈은 있다. 하루에 딱 한 번, 그것도 딱 5분간, 빗장에 틈이 생긴다.

점심시간이 되면 정문의 경비도 살짝 느슨해진다. 공략 포인트는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사무실로 복귀하는 약 5분간이다. 개중에는 사원 카드를 깜빡 사무실에 두고 나온 직원도 있기 때문에 경비들도 일일이 체크하지 않고 들여보낸다. 아예 입구 자체를 개방해놓는 건물들도 있다. 이때를 노리면 된다. 사람들 사이에 묻어서 통과하면 아무 문제 없이 진입할 수 있다.

그날 대걸레는 이 틈을 노리고 거기에 갔다.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건물 밖으로 속속 회사원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리로, 혹은 저리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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