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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07 09:16 수정 : 2014.10.21 10:13

강태식 소설 <32화>



점심시간은 대략 한 시간이다. 그 한 시간 동안 대걸레는 아무 데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대기할 생각이었다. 그늘진 곳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맴맴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안내책자의 내용을 다시 한번 숙지하거나, 건물 진입에 성공한 이후 고객들을 상대로 세일즈를 펼치는 자신의 모습을 이미지 트레이닝하면서 자신감을 키우는 시간으로 유용하게 활용한다……. 처음 계획은 그랬다. 하지만 야, 나를 내보내! 바깥세상으로 나오려는 그분 때문에 갑자기 상황이 급박해졌다.

하늘에는 띠엄, 새털구름이 떠가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그때, 세상은 참 평화로웠다. 바깥세상은 그랬다. 하지만 대걸레라는 세계에는 우르릉 쾅 천둥이 치고, 빠지직 번개가 하늘을 쪼개고, 파바박 짱돌만 한 우박이 지붕을 때리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체감온도에도 불구하고 대걸레는 더운 줄 몰랐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외부세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대걸레와, 야, 빨리 문 열어,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그분뿐이었다. 눈앞이 노랗게 떴다. 더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한 번의 거친 파도가 그렇게 지나갔다. 거짓말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상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날씨가 덥다는 것도 느껴졌다. 후유,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다음이라 각오도 달라졌다. 닥치면 닥치는 대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되면 되게 하리라, 평소에 없던 자신감도 생겼다. 대걸레는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긴장해 있던 근육을 풀었다.

야, 빨리 문 안 열고 뭐 해?

5분쯤 후에 2차 대폭발이 일어났다. 그분의 힘이 한층 강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기력이 소진된 괄약근으로는 그분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바지를 내리고 싶었다. 인간이라는 것도, 육체라는 것도 무거운 사슬처럼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훨훨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만 싶었다.

대걸레는 정면에 보이는 빌딩의 출입구를 향해 성난 코뿔소처럼 무작정 돌진했다. 이성 같은 건 버린 지 오래였다. 회전문을 통과했다. 건물로 진입했지만 출입통제용 수평 바가 앞길을 막고 있었다. 대걸레는 그 수평 바를 노려보며 도움닫기를 했다. 트랙 위에 세워진 허들이라고 생각했다. 단숨에 풀쩍 뛰어넘었다.

“이봐요, 잠깐!”

누가 대걸레를 불렀다. 하지만 대걸레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건물 내에 진입한 뒤에도 대걸레는 계속 달렸다. 엄청난 스피드였다. 1층 로비에는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24층에 멈춰 있었다. 대걸레는 비상구 쪽으로 뛰었다. 계단으로 2층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화장실 팻말이 보였다. 일단 거기로 무작정 달렸다.

점심시간이라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칸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달달달, 손이 떨렸다. 허리띠가 악마의 족쇄처럼 느껴졌다. 가위가 있다면 자르고 싶었다. 겨우 바지를 내리고 변기 위에 앉았다. 바로 대폭발이 일어났다. 쿠아앙!

그분을 내보내면서 대걸레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갔다. 나만의 공간이다. 여기서라면 실컷 쌀 수 있다. 후유, 대걸레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야도 밝아졌다. 벽에 두루마리 휴지가 걸려 있었다. 옆에 휴지통도 보였다. 타일 바닥에 물이 조금 고여 있었지만 그런대로 쾌적한 분위기의 화장실이었다. 없는 게 없었다. 비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읽을거리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것도 있었다. 대걸레는 변기 위에 앉아 화장실 벽에 누가 써놓은 이런 낙서를 읽기 시작했다.

꿈에 여자가 나왔다. 끝내줬다. E컵 사이즈의 유방을 달고 있었다. 무거워 보였다. 두 손으로 살포시 받쳐주고 싶었다. 쪼물딱 쪼물딱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싶었다. 엉덩이도 엄청 컸다. 탱탱볼 같았다. 쫀득쫀득해 보였다. 온몸으로 엉덩이의 고탄력을 경험하고 싶었다. 얼굴도 죽여줬다. 몽롱하고 게슴츠레하게 뜬 두 눈, 하지만 오뚝하게 생긴 코는 귀여웠다. 빨갛고 도톰한 입술은 관자를 내밀고 있는 조개처럼 살짝 벌어져 있었다. 그 속에 혀를 집어넣고 싶었다. 여자의 혀와 합체하여 몸부림치고 싶었다. 옷은 위에 하나, 아래 하나가 전부였다. 손바닥만 한 천 조각 두 장으로 소중한 부분만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하지만 보일락 말락, 그래서 더 섹시하고 관능적이었다.

아, 두 개의 거대한 유방 사이로 보이는 저 깊고 아름다운 젖가슴! 동양에서는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그 계곡의 밑바닥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밑에 위치한 계곡은 어떨까? 상상했다. 수풀에 뒤덮인 언덕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언덕에 얼굴을 비비며 마음껏 뛰놀고 싶었다. 그러다 벅찬 가슴을 안고 계곡에 내려가면 향기로운 공기에 취해 달콤한 물로 마른 목을 축일 수 있으리라. 아, 생각만 해도 황홀했다.

Come on, baby!

여자가 내게 손짓했다. 위를 가리고 있던 천 조각이 하늘하늘 꽃잎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마침내 베일에 싸여 있던 두 개의 거대한 유방이 그 농염하고 관능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나를 향해 빳빳하게 서 있는 한 쌍의 유두도 보였다. 수줍은 연보랏빛이었다. 나도 자꾸만 커지고 딱딱해졌다. 그러다 찍, 발사하고 말았다. 꿈이었지만 낭비한 총알이 아깝지 않았다.


너무 말초적이고 본능적인 내용이었다. 삐뚤빼뚤, 한순간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글씨가 독서의 몰입도를 방해했다. 서술자도 1인칭 주인공이었다. 가장 초보적인 형태의 글이었다. 필자는 1인칭 시점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자신의 리비도에 잠재되어 있는 성적 환상을 여과 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점이 오히려 글에 힘을 실어주었다. 말초적인 내용에서 묵직한 매력이 느껴졌다. 1인칭 시점은 이야기에 흡입력을 더했다. 한 자 한 자 읽어나가는 동안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주인공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비록 꿈속이지만 여체의 이곳저곳을 탐방하며 돌아다닐 때는 다량의 아드레날린이 콸콸 용솟음치는 느낌이었다.

대걸레는 부푼 마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을 계속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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