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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10 09:38 수정 : 2014.10.21 10:13

강태식 소설 <34화>



다음 날, 대걸레는 일부러 ○○빌딩을 찾아갔다. 지은 지 오래된 6층 높이의 상가건물이었다. 당연히 출입은 자유로웠다. 상점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이 보이고, 가끔 손님인 듯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도 보였다. 엘리베이터 같은 건 없었다. 5층까지 올라가려면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대걸레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한 칸 두 칸 계단을 올라갔다. 하지만 연재물에 대한 기대 덕분에 힘든 줄도 몰랐다.

어느새 5층이었다. 양옆으로 길게 뻗은 복도의 한쪽 끝에 남자 화장실이 있었다. 휴지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다. 비위생적인 데다가 악취까지 심하게 났다. 하지만 상가에서 이용하는 공동 화장실이기 때문에 규모는 꽤 컸다. 세 칸짜리 화장실이었다. 끝에서 두 번째 칸이니까……. 대걸레는 가운데 칸으로 들어갔다.

변기 위에 주저앉아 화장실 문을 걸어 잠갔다. 그날의 목적은 배설이 아니었다. 바지는 내릴 필요가 없었다. 대걸레는 한껏 부푼 마음으로 연재의 제2편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정면, 문 뒷면을 살폈다. 장기매매를 알선한다는 내용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동성연애 하실 분을 모집 중이라는 메모와 연락 바란다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다음은 좌측 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단편적인 낙서와 조잡한 삽화들, 하지만 제2편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우측 벽을 살폈다. 거기에 있었다! 분량은 지난 편과 비슷했다. 글씨체도 동일한 것 같았다. 연재물 중 제2편이 확실했다. 대걸레는 선물 포장지를 벗기듯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한 자 한 자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다. 서술자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인 ‘나’는 친구네 누나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의 용도나, 누구의 방인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곁가지를 망설임 없이 쳐낸 깔끔한 전개였다. 과감한 생략을 통해서 글의 핵심부로 돌진하는 작가의 저돌적인 기법이 돋보였다.

하지만 방에 대한 묘사만큼은 치밀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방이라는 밀폐된 공간을 아래는 핫팬츠, 위에는 배꼽티뿐인 친구네 누나와 단둘이 공유한다. 자칫 직설적인 문장 몇 개로 격한 감정을 남발하면서 글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대신 묘사를 통해서 감정을 전달했다. 비유적인 표현 속에 참을 수 없는 흥분을 녹여냈다. 사실적인 부분에서는 주인공이 느끼는 긴장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투박하면서도 밀도 있는 터치와 작가의 집요한 시선에 이끌려 대걸레는 어느새 밀회의 한복판으로 떨어진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친구 누나의 나이에 대한 언급도 잠깐 나왔다. 대학교 4학년이었다. 여자 나이 스물셋. 아! 왠지 모르게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는 절묘한 설정이었다.

한동안 글은 친구 누나의 체취에 대한 묘사로 지면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등장한 것이 사과였다. 전형적인 진행이었다. 모든 ‘친구 누나’ 시리즈에서는 과일을 소품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남성의 물건을 상징하는 바나나였다. 누나들은 바나나를 깨물어 먹지 않았다. 살포시 입 안에 머금고 쪽쪽 빨아 먹었다. ‘내 바나나가 크고 딱딱해졌다.’ 이런 문장이 뒤를 잇기도 했고, ‘누나, 내 바나나도 빨아줘.’ 이런 대사가 끼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가가 사용한 과일은 사과였다. 바나나처럼 직접적이고 전형적인 소재에서 탈피해 ‘친구 누나’ 시리즈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돌파구를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과라는 과일의 상징성도 잘 이용했다. 저 구약시대의 에덴동산에도 사과가 있었다. 그 사과를 사탄의 유혹에 빠진 인간이 따 먹게 된다. 그리고 죽음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지상으로 추방당한다. 사과는 금기의 과일이다. 작가는 사과라는 과일을 통해서 인간의 원죄라는 신학적인 명제와 유혹에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을 함께 아우르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또 이브라는 원형에 친구 누나를, 아담이라는 원형에 주인공인 나를 대입시킴으로써 앞으로의 사건에 대한 복선을 미리 깔아놓은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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