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38화>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돈은 한참 전에 떨어졌고, 그날은 쌀이 떨어져 대걸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침부터 굶었다. 그래도 먹고살겠다고 집을 나섰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현기증이 밀려와 머리가 어지러웠다. 뭐라도 먹어야 힘이 날 텐데, 생각하며 대걸레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툭, 발끝에 뭐가 차였다. 먹다 버린 빵 조각이었다. 베이커리 빵이 아니라 슈퍼에서 파는 봉지 빵이었다. 그래도 반 이상 남아 있었다. 한 입 먹고 에이 맛없어, 그냥 버린 것 같았다.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걸레는 어느새 빵 주위를 배회하며 안절부절 마음을 잡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너 왜 이래? 저게 먹고 싶은 거야?
대걸레는 자신의 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깨끗해 보이는데 아깝잖아.
몸이 어눌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대답했다.
네가 거지야?
하지만 배가 고픈걸.
대걸레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나 주위를 살폈다.
정말 주울 거야?
저런 게 버려져 있으면 길이 더러워지잖아. 그냥 줍기만 할게.
대걸레는 재빨리 빵을 주워 옷 속에 숨겼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한 입 한 입 아껴 먹었다. 씹기도 전에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렇게 맛있는 빵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하지만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대걸레는 두 번째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총 다섯 편으로 구성된 연재물이었다. 20대 초반의 글래머 가정부와 50대 후반의 빛나리 사장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육담을 주요 테마로 하는 시리즈였다. 이 작품을 통해 저자 대걸레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SM적 성향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줄 생각이었다. 시점도 1인칭이 아닌 3인칭을 사용해 원숙미를 더했다. 채찍과 구속복, 재갈 등의 소재는 글의 볼륨감을 높였다. 게다가 호소력 짙은 문장과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감정처리는 어느덧 프로 작가로 거듭난 대걸레의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제목은 ‘글래머 가정부와 빛나리 사장님의 홀딱 벗은 섬띵 스페셜’이었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은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충혈된 눈으로 어금니를 악물었다. 못할 짓이 없을 것 같았다. 그날 대걸레는 세계문학 전집을 두 질이나 팔았다. 실적을 올린 덕에 바로 가불을 할 수 있었다. 저녁은 분식점에 앉아 떡볶이와 순대를 먹었다. 하지만 돈이 더 필요했다. 공과금도 내야 했고 밀린 방세도 청산해야 했다.
대걸레는 〈글래머 가정부와 빛나리 사장님의 홀딱 벗은 섬띵 스페셜〉 시리즈 중 제1편을 도심에 자리 잡은 한 빌딩의 남자 화장실 벽에 발표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별도의 공지사항을 글 하단에 첨부해두었다.
기대하시라, 글래머 가정부와 빛나리 사장님의 다음 이야기! 구속복을 입은 글래머 가정부의 운명은? 드디어 채찍을 손에 쥔 빛나리 사장님의 눈부신 활약상! 이 모든 이야기가 다음 편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독료는 단돈 1,000원! 아래의 번호로 문자 요망! 여러분을 다채로운 관능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대걸레는 맨 마지막 줄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 열한 자리를 기입했다. 이제는 초조한 마음으로 독자들의 심판을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었다. 제발, 제발……. 대걸레는 화장실 벽에 이마를 대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렸다. 최선을 다했노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보기도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기대와 불안에 밤잠을 설쳤다. 업무 시간에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작품의 완성도에는 자신이 있었다. 가독성도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문제는 대중의 반응이었다. 차가울 수도, 뜨거울 수도 있었다. 과연 어느 쪽일까?
대금결제 방법은? 다음 편은 어디에?
저를 다채로운 관능의 세계로 초대해주세요.
다행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며칠의 잠복기가 지나자 구독을 희망하는 독자들의 문자메시지가 쇄도했다. 대걸레는 〈글래머 가정부와 빛나리 사장님의 홀딱 벗은 섬띵 스페셜〉 시리즈 전편을 미리 확보해둔 네 곳의 남자 화장실 벽에 마저 연재했다. 그리고 구독을 희망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답글을 문자로 날렸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대금결제는 아래 있는 계좌번호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입금이 확인되는 대로 연재 장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신 성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며, 울림이 있는 글로 보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연일 계속되는 구독 요청 문자로 대걸레의 휴대전화는 몸살을 앓았다.
과거에는 주로 달력이나 시계 대용으로만 쓰였던 휴대전화였다. 알람 기능은 생활의 규모를 잡아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었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생일을 유일하게 축하해준 것도 휴대전화에 깔려 있는 일정관리 시스템뿐이었다. 휴대전화의 게임 애플리케이션이 없었다면 그토록 길고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대걸레에게는 가족처럼 고마운 휴대전화였다.
하지만 휴대전화 때문에 외로울 때도 많았다. 가끔 걸려오는 전화라고는 보이스피싱이 다였다. 아무도 대걸레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래서 휴대전화는 고독과 단절의 상징이었다. 휴대전화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쓸쓸한 마음이 들곤 했다. 한번은 정말 죽일까도 생각했다. 통화도 하지 않으면서 꼬박꼬박 기본요금이 나가는 게 아까웠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통신강국 대한민국에서는 초등학생들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닌다. 휴대전화를 죽이는 순간, 이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당할 것만 같아 겁이 났다. 물론 지금은 그때 죽이지 않은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구독을 희망하는 문자메시지가, 단절된 줄만 알았던 외부세계로부터의 교신이 접수되고 있었다. 세상은 대걸레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대걸레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대걸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걸 알게 해준 휴대전화였다.
어제 다 읽었습니다. 그때의 감동과 흥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네요. 앞으로도 멋진 글 부탁드립니다. 건필하세요. 저는 뒤에서 작가님을 응원하겠습니다.
대걸레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글래머 가정부와 빛나리 사장님의 홀딱 벗은 섬띵 스페셜〉에 이어 발표한 〈어느 운전기사의 체험수기―나는 사모님의 은밀한 계곡에 차를 파킹시켰네〉 시리즈 다섯 편도 독자들과 평단의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김 기사 차가 너무 커, 라는 사모님의 분홍 빛깔 대사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사모님의 은밀한 계곡에 차를 파킹시키는 장면에서는 정제된 표현과 균형 잡힌 묘사로 평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그 후로도 대걸레는 작품성 있는 글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경상도 터널과 전라도 기차〉에서는 지역감정을 넘어선 대동단결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사랑의 고기 떡볶이〉는 분식점에서 일어나는 애환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잘 버무려낸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조개 여단과 고추 군단의 혈투―쾌락의 고지에 깃발을 꽂아라!〉를 발표할 때쯤, 마니아층이 형성되었다. 열성 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동호회 형식의 자생적인 팬클럽이 생겨나기도 했다. 대걸레는 어느덧 명실상부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었다. 통장 계좌로 착착 인세가 들어왔다.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오래된 가전제품도 교체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가끔 외식도 했다. 돈이 좋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하루하루였다.
하지만 인기도만큼의 유명세도 톡톡히 치러야 했다. 여기저기서 한번 와주십사, 하는 문자메시지가 쇄도했다. 독자와의 만남 형식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술자리를 갖자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번은 출판업계 쪽에서 접근해온 적도 있었다. 지금까지 발표한 글들을 한데 묶어 작품집을 내자는 제안이었다. 그때는 정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작가가 가져가는 인세 비율을 듣고 생각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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