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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1 09:54 수정 : 2014.10.21 10:05

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강태식 소설 <41화>



6.

그날 회식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오늘 회식 메뉴는 뭐로 할까?”

추 부장부터 그랬다. 회식 메뉴 같은 걸 상의하다니, 추 부장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어디 아픈가? 은근히 걱정도 됐다. 추 부장은 우주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자기가 소중하기 때문에 안하무인이라는 네 글자를 좌우명으로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다. 당연히 남의 취향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회식 메뉴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냥 한마디 툭 던지는 게 다다.

“난 개고기.”

그럼 그날의 회식 메뉴는 보신탕이다.

“오늘은 삼겹살이 당겨.”

추 부장이 이렇게 말하면 그날은 찍소리 못하고 삼겹살집에 끌려가 고기를 구워야 했다.

“제가 요즘 보약을 먹어서요. 돼지고기는 먹지 말랍니다.”

마 대리의 사정 같은 건 봐주지 않았다.

“건방지게 보약을 먹는단 말이야. 그럼 보약 먹는 사람은 빠져. 오늘은 무조건 삼겹살이야.”

지금까지의 추 부장은 그랬다.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무서운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는 회식계의 불도저, 그게 추 부장의 진면목이었다.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했다. 역시 어디가 아픈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신선해 씨는 식인종이 웬일이래?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반면 마 대리의 표정은 일이 바쁜 척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했다. 사무실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밤안개처럼 스산하게 흘렀다. 뭐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마음속에 내장된 위험 감지 시스템에 경계경보가 들어왔다.

“오늘은 일찍들 마무리하고 그만 일어나지.”

그날은 용 과장까지 이상했다. 전염병이 도는 것 같았다.

“벌써 가게?”

야근을 직장인의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용 과장이었다. 용 과장에게 정시퇴근은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인류의 적이었다. 그런 용 과장 밑에서 나와 마 대리는 직장인의 기본 소양을 한껏 함양하며 지구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었다.

“저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실례할게요.”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은 직장인의 기본 소양 같은 건 내팽개친 채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신선해 씨뿐이었다. 당당하게 사무실 문을 나서는 신선해 씨가 부러웠다. 나도 직장인의 기본 소양 따위 과감하게 내팽개치고 싶었다. 인류의 적이 되어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은 신선해 씨의 옷자락에 묻어 정시퇴근이라는 걸 시도해본 적도 있었다.

“저도 약속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직장인의 기본 소양을 저버릴 수도, 지구의 평화를 위협할 수도 없었다.

“취소해.”

지금까지의 용 과장은 그랬다. 사무실 문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다음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 부하직원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뒤 그 열쇠를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집어던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인간, 그 인간이 바로 용 과장이었다. 밤새도록 채찍 같은 걸 휘두르며 하, 하, 하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용 과장의 모습이 떠올라 부르르, 치를 떤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용 과장이 갑자기 변했다.

“오늘도 수고들 많았어.”

삐뽀삐뽀, 마음속에 내장되어 있는 위험 감지 시스템이 본격적인 작동을 개시했다. 수십만 마리의 새 떼가 까맣게 하늘을 뒤덮고, 내륙까지 밀려온 해일이 도시를 덮치고, 사납게 변한 동물들이 사람을 공격하고……. 재난 영화의 주요 장면들이 계속 떠올랐다. 저 먼 우주에서 거대한 운석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밤하늘은 아름답기만 했다.

“대장님이 먼저 들어가시죠.”

회식 장소마저 이상했다. 4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고급 한우 전문점이었다. 정원이라는 게 있었다. 연못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비단잉어들도 보였다. 방앗간에서 곡식을 빻는 것도 아닌데 물레방아까지 돌아가고 있었다. 동양화의 화폭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정원 어디에선가 소를 타고 나타난 백발노인이 이런 말을 할 것 같았다. 자네 지금 위험해. 삐뽀삐뽀, 위험 감지 시스템이 계속 적색경고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내실로 들어갔다. 종업원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한지로 바른 미닫이문이 다소곳이 열렸다. 머릿수대로 준비해놓은 좌식의자가 내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점잖게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 한편에는 장생도를 수놓은 으리으리한 병풍까지 펼쳐져 있었다. 일행을 따라 발을 들여놓긴 했지만 역시 내가 있으면 안 될 곳 같았다. 이런 곳에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면 포졸들이 몰려와 잡아갈 것 같았다. 삐뽀삐뽀.

곧 상이 차려지고 술이 나왔다. 불과 함께 고기도 들어왔다. 마블링을 몸에 두르고 있는 한우를 보자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렇게 아름다운 건 먹고 소화시켜서 똥으로 만들면 안 될 것 같았다. 진공 처리한 다음 오랫동안 눈으로 감상하는 게 인간 된 도리 같았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가보로 물려주리라, 결심했다. 그런 한우를, 집게를 든 종업원이 척 불판 위에 얹을 때는 당연히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하마터면 당신 지금 뭐하는 짓이야? 종업원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를 지를 뻔했다.

“많이 먹어.”

아무튼 그날 추 부장은 계속 이상한 소리만 했다. 삐뽀삐뽀.

“가족 같은 분위기로 편하게 한잔하자고.”

건배를 외치는 용 과장도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건 마찬가지였다. 삐뽀삐뽀.

그래도 아름다운 한우는 맛도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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