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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2 09:29 수정 : 2014.10.22 09:29

강태식 소설 <42화>



2차는 양주였다. 역시 이상했다. 지금까지는 소주를 마시다가 맥주로 갈아타면 그게 2차였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불쑥 양주가 끼어들었다. 삐뽀삐뽀.

양주도 한우만큼 아름다웠다. 저렇게 아름다운 액체를 오줌으로 만들어야 한다니, 어여쁜 꽃을 짓밟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죄책감이 밀려왔다. 안 될 것 같았다. 눈으로만 오래오래 감상하면서 즐겨야 할 것 같았다. 귀한 물건일수록 가보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어쩔 수 없이 건배도 하고 파도도 타면서 양주를 마셨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만은 무거웠던 것 같다.

반면 용 과장은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아름다운 액체 양주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야.”

술집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사무실이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열변을 다량의 침과 함께 토해냈다.

“진정한 프로는 말이야. 사무실 밖에서도 프로야. 문제 하나 낼까. 사무실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놈이랑 회식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놈이랑 어떤 놈이 더 오래, 끝까지 살아남을 것 같아? 다른 나라 이야기할 것 없고,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말이야.”

용 과장이 수수께끼를 내는 동안, 그 앞에 앉아 있던 이 몸은 장대 침을 맞으며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고향에 돌아온 듯 마음이 편했다. 비록 뽕짝 대신 재즈가 흐르고 있지만, 소주 대신 양주를 마시고 있지만, 용 과장이 인생강의를 하며 다량의 침을 분사하는 곳, 그리운 내 고향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도 술술 풀렸다.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래도 회식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놈이 오래, 끝까지 살아남을 것 같다.

“정답. 딩동댕!”

정답이었다. 상품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뻤다.

벌컥벌컥 양주를 마시며, 우걱우걱 과일 안주를 먹어치우는 마 대리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그리운 내 고향은 변한 게 없구나.

“이거 공짜야?”

마 대리는 공짜의 화신, 공짜의 대마왕이었다. 공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몸 생각 따위 뒤로한 채 벌컥벌컥 공짜 양주를 과음하고 있는 마 대리의 모습이, 이게 얼마 만이냐? 고향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처럼 반가웠다.

“나 음란하게 놀고 싶어. 아가씨를 불러줘.”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 뒤질세라, 추 부장의 맹활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연하고 쫀득쫀득한 아가씨를 불러줘.”

입맛을 다시는 걸 보니 접대 역이 아니라 식용을 원하는 것 같았다.

“대장님, 신선해 씨가 있는데 아가씨를 부르면 되겠습니까.”

용 과장이 가만히 있는 신선해 씨에게 툭툭 잽을 날렸다. 아, 이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 비록 포장마차가 아닌 고급 바에 앉아 있지만, 순대 볶음이 아닌 과일 안주를 먹고 있지만,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향의 흙냄새에 취해 한적한 오솔길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나도 신선하지가 않아. 질기고 물컹물컹한 아줌마는 싫단 말이야.”

신선해 씨의 얼굴에 바로 빨간불이 들어왔다.

“거기 두 분, 전자발찌 채워드려요?”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신선해 씨다. 그래서 늘 마음속 깊은 곳으로 존경하고 있다.

“농담이야, 농담. 왜 정색을 하고 그래? 우리가 남이야? 그런 농담도 못 해?”

역시 용 과장은 노련했다. 언제 액셀을 밟고, 언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처세술의 달인, 사회생활의 진정한 초절정 고수였다.

“신선해 씨야 우리 사무실의 꽃이지. 꽃이 얼굴을 붉히면 쓰나? 화분에 물 줄 테니까, 자, 한잔 받아.”

용 과장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추고 있었다. 아, 눈부셔!

“나도 전자발찌는 사양할래.”

냉큼, 용 과장의 후광 뒤로 몸을 숨기는 추 부장. 양주를 마셔도 하는 짓들은 비슷했다. 덕분에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아, 고향의 흙냄새!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그날의 회식도 그렇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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