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43화>
“분위기도 화기애애한데, 우리 야자타임이나 할까?”
다시 삐뽀삐뽀, 경고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날 추 부장은 럭비공 같았다.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튀고 있었다. 평소의 추 부장은 부하직원 보기를 잡초처럼 하는 인간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꾹꾹 밟아줘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마 대리와 이 몸을 꾹꾹 짓밟았다. 말로 안 될 때는 몸을 사용하기도 했다. 밭다리와 안다리 같은 씨름 기술을 동원하는가 하면, 레슬링 기술인 헤드록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 추 부장이 불쑥,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며 야자타임을 제안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수십만 마리의 새 떼가 까맣게 하늘을 뒤덮은 것보다, 내륙까지 밀려온 해일이 도시를 강타하고, 사납게 변한 동물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이상 현상이었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거대 운석이 밤하늘 저 멀리 보이는 것 같았다. 삐뽀삐뽀.
“야, 식인종!”
마 대리의 용감무쌍한 목소리가 대뜸 고지에 깃발부터 꽂았다. 추 부장은 놀란 눈으로, 나머지 일동은 긴장된 얼굴로 마 대리의 상태를 살폈다. 공짜 양주를 보리차처럼 마셔대더니 간이 부은 것 같았다. 풀린 눈에서 안광이 빛을 발했고, 돌아간 혀에서 독설이 날개를 펼쳤다.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사람들을 괴롭혀? 너희 나라로 돌아가!”
마 대리가 쏘아 올린 축포가 빵, 어두운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막힌 가슴이 펑,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문득 바라본 마 대리의 모습이 독립을 위해 산화한 애국선열처럼 위대해 보였다. 그때는 정말 마 대리 모양의 동상을 세워 길이길이 보존하고 싶었다.
“풋.”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추 부장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올라간 건 한쪽 입꼬리뿐이었다. 표정도 밝지 않았다. 어쭈, 이 자식 봐라, 그런 경악이, 야자타임 같은 건 하지 말 걸 그랬어, 그런 후회가 큼지막한 얼굴 가득 아로새겨져 있었다.
“식인종은 아프리카로 돌아가란 말이야!”
상황파악을 못 하는 건 마 대리뿐이었다. 나룻배에 몸을 실은 마 대리가 유유히 흐르는 요단 강을 건너고 있었다. 보따리 짐을 등에 메고 먼 북망산천을 향해 길을 떠나고 있었다. 어떻게든 말려야 했다.
“마 대리, 그러지 마.”
“넌 빠져! 난 정말 식인종이 없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며 요단 강 건너 저편으로, 이제는 그렇게 멀지도 않은 북망산천으로, 성큼성큼 내달리는 마 대리. 하지만 마 대리는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누군가의 뚜껑을 활짝 열고 그 속에 있는 버튼을 꾹 눌러버렸다는 사실을. “내가 아프리카로 가면 돼?”
추 부장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변했다. 포근한 눈길로 마 대리를 바라보며 인자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찔끔, 오줌을 지릴 만큼 으스스한 모습이었다.
“그래, 너만 아프리카로 돌아가면 대한민국도 조금쯤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거야.”
여기까지가 추 부장의 한계였다. 이 말을 신호로 추 부장이라는 화약고가,
“으라차차!”
엄청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술상이 엎어지고, 양주 병이 깨지고, 과일 안주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투포환처럼 날아갔다. 말릴 틈도 없었다.
“아뵤!”
괴성과 함께 이성을 잃은 추 부장이 제정신을 잃은 마 대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