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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31 09:16 수정 : 2014.10.31 09:16

강태식 소설 <49화>



“쎄쎄, 쎄쎄.”

물을 마신 화교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책 한 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식칼 아줌마는 멀어져가는 화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잠깐 만난 화교가 무당파의 현 당주이자 구양선인으로 알려진 무림의 절대고수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구양선인과 식칼 아줌마의 만남은 이렇게 딱 한 번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 사제지간으로 맺어지게 된 것은 구양선인이 남기고 간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집에 와서 옥편을 펼쳐본 식칼 아줌마는 그제야 책의 제목이 《태장기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뭔데요?”

“무당파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의 비급이다.”

다음 날부터 식칼 아줌마는 독학 수련에 들어갔다. 초식을 연마하고 내공을 쌓아 올렸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고수의 무공도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다. 어쩌면 구양선인도 식칼 아줌마의 그런 재능을 한눈에 간파하고 무당파의 절대비급인 《태장기공》을 선뜻 내준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식칼 아줌마가 《태장기공》을 마스터한 것은 방년 20세, 약관의 나이였다.

무림 최강의 무공을 몸에 익히자 유혹도 그만큼 많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내공의 힘은 무한했다. 《태장기공》은 식칼 아줌마를 인간 이상의 존재로 만들었다. 경공술로 몸을 날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닐 수도 있었다. 장풍 한 방이면 건물이 무너지고 산이 흔들렸다. 한때는 정말 신이 된 기분이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깊은 밤,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 위에 우뚝 서서 거센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하, 하, 하, 사자후를 토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는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의 의협심은 오래전부터 식칼 아줌마의 인생철학이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았다. 개인의 이익을 생각한 적도 없었다. 대의라는 이름 아래 목숨을 바쳤다. 식칼 아줌마는 언제나 약자들 편에 서서 악당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로 활약했다.

“정말이요?”

“정말이다.”

식칼 아줌마의 이름은 곧 전설이 되었다. 덕이 있는 곳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법이라고 했던가. 식칼 아줌마의 존성대명을 듣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영웅호걸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대협의 향기로운 이름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양어깨에 짊어지고 갈 이 나라의 동량들이었다.

“오래전부터 대협의 의협심을 사모하였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존안을 뵈니 반갑고 기쁜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식칼 아줌마는 이들을 환대하며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하룻밤의 술과 노래로 회포를 풀었다.

“내가 오늘 귀공들의 의협과 의기에 취해 밤을 지새울까 합니다. 무릇 나라가 어렵고 백성이 굶주리면 영웅들이 일어난다 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영웅호걸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한 잔의 술로 대의를 세우고 두 잔의 술로 뜻을 함께함이 어떻겠습니까?”

“저희는 대협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각별한 이들이 있었으니 그 하나가 소소요, 그 둘이 아령이었다. 이 둘은 특히 빼어난 미색을 자랑했다. 아름다운 자태는 경국지색을 무색게 했고, 꽃다운 얼굴은 절세가인조차 탐낼 정도였다. 이슬을 머금은 듯 청초하다가도, 때로는 활짝 핀 장미꽃처럼 화사한 두 영양이 바로 소소와 아령이었다. 뿐만 아니라 둘은 문과 무 어느 한 곳에도 막힘이 없었으며 너그러운 인품으로 사람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후에 이들은 식칼 아줌마와 자매의 연을 맺고 무당의 무공을 연마해 그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니, 이것이 곧 무당 3대협의 출발이었다.

무궁화가 지천으로 만개한 어느 날이었다. 그날 식칼 아줌마는 소소와 아령을 불러 다음과 같이 평소의 생각을 말했다.

“오늘과 같은 날, 내가 무궁화 아래서 두 공자들과 함께 자매의 연을 맺고자 합니다. 공자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소소와 아령이 한마음 한뜻으로 대답했다.

“저희 두 사람의 뜻도 그러합니다.”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술잔을 높이 들고 하늘에 맹세했다.

“우리 세 사람이 비록 태어난 날은 다르나 한날한시에 죽기를 바랍니다.”

한 잔의 술로 자매의 연을 맺은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높고 낮음의 서열을 정하게 되었다. 무당 3대협 중 최고 연장자는 식칼 아줌마였다. 당시 식칼 아줌마의 나이는 방년 22세. 소소와 아령은 각각 20세와 19세의 꽃다운 영양들이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가 무당 3대협의 리더가 된 것은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생을 구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자리에서 어찌 나이의 많고 적음을 논하겠습니까? 저는 천성이 어리석고 그릇이 작아 중용할 위인이 못 됩니다. 두 공자께서는 이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식칼 아줌마의 거듭되는 고사에도 불구하고 소소와 아령이,

“겸손도 과하면 예의를 그르친다 하였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귀공의 탁월한 무공과 고매한 인품, 무엇보다 빼어난 미모를 따르려 하는 것이니 부디 사양하지 말아주십시오.”

입을 모아 이구동성으로 추대하는지라 이를 물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빼어난 미모요?”

“더 들어봐라.”

이후 무당 3대협은 악행을 일삼는 지역사회 주먹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게 된다. 야습과 급습이 이어지고, 어딜 가나 테러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폭력조직들은 단독으로, 혹은 연합을 구축하여 계속 도발해왔다.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해 암살을 사주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무당 3대협은 천하무적을 자랑하는 일당백의 고수들이었다. 무당 3대협의 주먹이 전광석화처럼 작렬하는 곳에, 무당 3대협의 발차기가 일진광풍처럼 휘몰아치는 곳에 지역사회에서 내로라하던 어깨들도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지역의 모든 폭력조직들은 무당 3대협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민생치안 확립과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놀라운 성과였다. 무당 3대협의 아름다운 이름은 널리 회자되었고, 그 의로움 또한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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