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53화>
무당 3대협은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 코앞에서 범인을 놓친 일이 분했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는 일렀다. 총성이 들린 건 1분 내외였다. 멀리 도망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어쩌면 근처에 숨어서 무당 3대협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와라!”
식칼 아줌마가 사자후를 토해내며 범인을 도발했다.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다시 한번 식칼 아줌마의 사자후가 천지를 흔들었다. 주변에 있던 유리창들이 폭탄을 맞은 듯 일시에 박살 나버렸다. 쨍그랑, 바닥에 떨어진 유리 파편들이 한꺼번에 깨지면서 사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리고 얼마 동안 1초, 2초, 팽팽한 정적이 흘렀다.
뚜벅뚜벅.
어둠 저편에서 규칙적으로 다가오는 구둣발 소리가 들린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무당 3대협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막내 아령조차 온몸을 타고 흐르는 긴장감 때문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먹물을 뿌려놓은 듯 어두운 골목에는 전신주에 매달려 있는 가로등 하나가 전부였다. 구둣발 소리는 그 불빛 저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암흑의 지옥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악마가 그 문을 지나 걸어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뚜벅뚜벅.
잠시 후, 범인이 가로등 밑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외로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시력이 나쁜 것 같았다. 두껍고 커다란 금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복장도 평범했다. 싸구려 기성 양복을 위아래로 입고 있었다. 목에는 줄무늬 넥타이를 맸다. 가르마는 단정한 이 대 팔이었다. 업무에 지친 듯 좀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야근을 마치고 막 퇴근길에 오른 회사원의 이미지였다.
“네놈이냐?”
식칼 아줌마는 이번에도 사자후를 토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자리에 쓰러져 피를 토하고도 남을 만한 위력이었다. 무공이 고강한 소소와 아령조차 귀를 막으며 뒤로 한 발 물러설 정도였다. 하지만 범인은 씩, 넓고 하얀 치아를 모두 드러내며 반달눈을 한 채 웃고 있었다. 왼쪽 코끝에 달려 있던 사마귀가 실룩실룩 위아래로 움직였다.
“왜? 언니들도 나랑 한판 뜨시게?”
그게 돌주먹과 식칼 아줌마의 운명적인 첫 대면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도 상대가 품고 있는 살기 정도는 느낄 수 있게 마련이다. 나는 물론이고 소소와 아령 정도의 고수라면 상대가 뿜어내는 살기를 놓칠 리 없다. 하지만 돌주먹에게서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소와 아령이 손쓸 틈조차 없이 당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돌주먹은 엄청나게 빨랐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움직임조차 포착할 수 없는 속도였다. 한순간 갑자기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소소와 아령이 돌주먹에게 뒤를 잡힌 것도 눈 깜짝할 사이였다. 돌주먹은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소소와 아령의 척추뼈를 부러뜨렸다. 가격음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우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전부였다.
순간 식칼 아줌마의 눈은 이 대 팔로 가르마를 탄 돌주먹의 얼굴과 마주쳤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돌주먹의 금테 안경이 번쩍, 날카로운 역광을 발하고 있었다. 코앞이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우두둑, 소소와 아령의 척추뼈를 부러뜨리면서도 돌주먹은 넓고 평평한 치아를 드러내며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식칼 아줌마는 전율했다.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소름 끼치는 얼굴이었다.
놈의 일격에 소소와 아령은 벗어 던진 옷가지처럼 그 자리에서 허물어져 내렸다. 무릎이 꺾이고 머리가 땅바닥에 처박히는데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표정도 묘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문을 모르는 것 같았다. 독사에게 물린 작은 짐승처럼 소소와 아령의 눈에는 죽음의 공포만이 가득했다.
“언니, 몸이 안 움직여.”
아령의 목소리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사형! 도망치세요.”
마지막까지 식칼 아줌마를 걱정해주던 소소의 목소리가 눈물겨웠다. 그렇게 해서 남은 건 식칼 아줌마 혼자뿐이었다.
“언니가 제일 센가 봐? 잘됐다.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줘.”
바로 공격이 시작됐다. 돌주먹이 뻗는 정권과 발차기는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돌주먹은 급소만을 노려 주먹과 발을 날렸다. 불필요한 동작이 모두 제거된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깨끗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더 그랬다. 요만큼의 살기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땀 한 방울 흘리는 것 같지 않았다. 건조하고 빠른 템포로 식칼 아줌마를 계속 몰아붙였다. 돌주먹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살인기계 같았다.
반격 같은 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무차별하게 계속되는 공격을 막아내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손과 발을 사용해서 방어했다.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에 다다랐다. 돌주먹의 몸은 무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게 어디든, 돌주먹의 공격을 받아낼 때마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