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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10 08:46 수정 : 2014.11.10 08:46

강태식 소설 <55화>



식칼 아줌마는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한동안은 동네 마트에서 카운터를 보기도 했다. 인근 주점이나 편의점에서도 카운터를 지켰다. 하지만 카운터 보는 일은 돈이 되지 않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스트레스도 심했다. 한번은 대형 할인 마트에서 카운터를 본 적도 있었다.

“여기 책임자 누구야? 책임자 불러와!”

60대 초반의 남자였다. 다짜고짜 식칼 아줌마의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컴플레인의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만만한 상대를 골라 화풀이하는 것 같았다. 곧 담당 과장이 달려왔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담당 과장은 머리를 숙이고 무조건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60대 남자는 목소리를 높이며 길길이 날뛰었다.

“고객은 왕인데, 왕한테 이래도 돼?”

하마터면 주먹을 날릴 뻔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꾹 참았다. 담당 과장이 사과를 하라기에 머리도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60대 남자라는 인간 지뢰는 해체되지 않았다.

“입으로만 죄송하다면 다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반성의 울림이 안 느껴지잖아.”

식칼 아줌마는 한 번 더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무공 연마와 함께 인격 도야에도 힘썼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럼 무릎 꿇어!”

인격을 도야한 건 심신의 조화로운 균형을 위해서였다. 돌주먹과의 일전이 있기 전, 《태장기공》을 몸에 익힌 식칼 아줌마는 천하무적의 절대고수였다. 하지만 인격이 없으면 살인기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악 감상과 독서로 교양을 쌓고 인격을 길렀다. 하지만 그렇게 도야한 인격도 60대 남자의 컴플레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뭐 해? 당장 무릎 꿇어!”

60대 남자가 확, 식칼 아줌마의 뚜껑을 열고 꾹, 그 속에 들어 있는 빨간 버튼을 눌렀다. 결국 꽝! 식칼 아줌마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냥 가볍게 카운터를 내리쳤다. 강철이 휘고 나무가 부러졌다. 계산기용 모니터가 바닥에 떨어져 와장창,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사람 살려!”

60대 남자가 도망친 뒤, 식칼 아줌마는 그 자리에서 유니폼을 벗고 대형 할인 마트를 나왔다.

그 후로도 더러운 인간들을 많이 만났다. 작은 권력이나 몇 푼 안 되는 돈만 믿고 안하무인, 다른 사람들을 비웃고 무시하고 상처 주는 인간들이 사회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걸 자본주의의 자유라고, 있는 자의 권리라고 믿는 것 같았다. 식칼 아줌마는 그런 인간들을 볼 때마다 끓어오르는 살의를 힘겹게 참아 눌러야 했다. 어차피 급소 한 방이면 찍소리도 못하고 병풍 뒤에 누워서 향냄새 맡을 인간들이다. 그건 돈이 많건 적건, 권력이 있건 없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진 놈들은 자기가 대단하다고 착각한다. 이 나라에서는 돈만 있으면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니까 사람 같은 건 아무렇게나 막 해도 된다고 믿는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노릇인가?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전면에 나서서 풀풀 냄새를 풍기며 날뛰니까 사회가 이 모양이고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다. 식칼 아줌마의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마그마 같은 울분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다 식당에서 서빙을 보게 되었다. 사장은 50대 중반의 빛나리 아저씨였다. 질질 개기름이 흐르는 얼굴에 언뜻 보면 서글서글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본바탕에 깔려 있는 음흉한 모습들을 하나둘씩 꺼내놓는 그런 인간이었다. 빛나리 사장은 식당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식칼 아줌마의 몸을 슬쩍슬쩍 더듬었다. 처음에는 손이나 팔, 무릎 같은 곳을 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빛나리 사장의 손이 식칼 아줌마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식칼 아줌마는 조용히 빛나리 사장의 손을 어깨 위에서 걷어냈다. 하지만 빛나리 사장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뭐야, 이거? 종업원 주제에 사장님의 손길을 거부하겠다는 거야?”

식칼 아줌마는 어이가 없었다. 코를 정통으로 한 방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계속 일하고 싶으면 얌전하게 굴어!”

빛나리 사장은 과감하게 나왔다. 사장님의 손길로 식칼 아줌마의 엉덩이를 밀가루 반죽하듯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탱탱해! 이런 고탄력 엉덩이는 머리털 나고 처음 만져봐.”

식칼 아줌마는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폭발해도 되나? 기분대로 몸을 움직이면 살인을 저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참아야 하는 건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있어야 하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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