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56화>
“뭐야? 이 정도로 벌써 느끼는 거야? 탄력만 뛰어난 줄 알았더니 감도도 장난이 아닌데. 아주 질질 싸는구먼, 질질 싸. 이거이거 남자 굶은 지 백 년 이상 된 몸이야.”
빛나리 사장의 손은 종횡무진이었다. 어느새 가슴으로 올라와 주물럭대고 있었다.
“엄청 굶주려 있어. 온몸이 범해주세요, 넣어주세요, 몸부림치며 애원하고 있는 느낌이야. 아, 이런 몸은 용서가 안 돼. 따먹지 않으면 남자로서 자격미달이야. 좋아! 결심했어. 가게 문 닫으면 3번 방으로 와. 오빠가 홍콩 보내줄게. 밤새도록 몇 번이라도 범해줄게.”
어느새 빛나리 사장의 손이 치마 속으로 들어왔다. 노련한 손놀림으로 정성스럽게 팬티 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불끈, 주먹을 쥐어보는 식칼 아줌마였다. 끓어오르는 살의에 한순간 이성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살인은 안 돼! 이를 악물며 간신히 참았다. 대신 빛나리 사장의 양쪽 손모가지를 똑 분질러버렸다. 다시는 더듬지 말아야 할 곳을 더듬지 말라는 정의의 심판이었다.
“당장 나가!”
식칼 아줌마는 당연히 쫓겨났다. 물론 더 있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억울했다. 식칼 아줌마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잘못한 건 빛나리 사장이었다. 하지만 빛나리는 사장이고, 식칼 아줌마는 종업원이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떠올랐다. 돈 앞에서 선악마저 뒤집히는 이 나라의 자본주의가 끔찍한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식칼 아줌마는 세상을 배우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도 많았다. 생각해보면 인간 같은 인간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 같았다. 지난날의 의협심이 자취를 감췄다. 정의라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가 들었다. 그렇게 식칼 아줌마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미련은 없었다. 세상은 쓰레기장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쓰레기였다. 쓰레기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이쪽도 쓰레기처럼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식칼 아줌마는 이렇게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했다. 이래도 한 번 저래도 한 번인 인생, 막살아보리라 결심했다. 과거 약자의 편에 서서 불의를 응징하던 식칼 아줌마는 이렇게 해서 뼛속 깊숙한 곳까지 삐뚤어진 인간이 되었다.
“나는 소소와 아령을 부양해야 했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다.”
다시 누구 밑에 들어가서 피고용자로 일한다는 건 삐뚤어진 본성이 용납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면서 성실하게 사는 것도 바보짓처럼 느껴졌다. 식칼 아줌마는 불로소득을 원했다. 그래서 자영업을 시작했다.
“무슨……?”
학교 주변이나 유흥가의 뒷골목 등이 식칼 아줌마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다. 식칼 아줌마는 인적이 뜸한 시간을 노려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그럼 소매치기나 뻑치기요?”
“아니다. 그냥 가서 달라고 했다.”
“아, 삥!”
식칼 아줌마는 사람들을 불러 세운 다음 삥을 뜯었다. 개중에는 순순히 금품을 상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십중팔구는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왔다.
“너 뭐야? 죽고 싶어? 어디다 대고 개수작이야!”
공범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상대는 여자 하나다. 그래서 버럭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저 돈 없는데요.”
처음부터 오리발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완력 시범을 보여줘야 했다. 한동안은 건물이나 전신주 같은 지형지물을 파손했다. 그러다가 각목이나 쇠사슬 같은 기물을 미리 준비해 차력 시범을 선보이게 되었다.
“뒤져서 나오면 100원에 한 대씩이다.”
금방 요령이 붙고 경력이 쌓였다. 일이 손에 익자 위와 같은 전문적인 멘트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그러다 가끔은 과거에 일면식이 있던 지인들 몇과 작업 현장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아니, 귀공께서는 무당 3대협의 그…….”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처음에는 축지법과 경공술을 사용해 무작정 도망쳤다. 지금은 비록 2인의 불구자와 1인의 범죄자로 구성된 밑바닥 인생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인의예지를 실천하고 무를 숭상하며 의협심 하나로 무림을 호령하던 무당 3대협이 아니었던가. 과거 화려했던 무당 3대협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았다. 수입을 올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아직 위신이나 체면이라는 게 남아 있었다. 지인들의 금품마저 갈취한다면 길바닥에서 네 발로 기는 짐승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식칼 아줌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는 곧 위신과 체면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데 일일이 연연하다 보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건 잠깐이었다. 고개만 돌리면 충분히 외면할 수 있었다.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도 아침 이슬처럼 차츰 사라져갔다. 그에 비해 돈은 오래 남았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착실하게 밥을 먹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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