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57화>
“여기서 또 뵙게 되는구려. 내 귀공의 소식은 간간이 접하고 있었으나 워낙 중구난방이라 답답해하던 참이었소. 그런데 이렇게 또 귀공을 뵙게 되니 기쁜 마음 한량이 없구려. 그래, 그간 귀공과 다른 공자들께서는 어떻게 지내셨소이까?”
“닥치고 돈이나 내놔!”
한번은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경찰서장이 직접 찾아온 적도 있었다.
“당신이 정말 내가 알던 그 사람이란 말인가?”
“돈이나 내놓고 꺼져!”
“의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던 사람이……. 세상을 담고 백성을 품을 만큼 그릇이 컸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경찰서장의 이 말에 식칼 아줌마의 심사가 뒤틀렸다.
“옥수수 털리지 않게 어금니 꽉 물어라.”
무언가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가슴속 깊이 단단히 맺혀 있던 시절이었다. 경찰서장은 식칼 아줌마가 날린 아구창 한 방에 중환자실로 옮겨져 사경을 헤매야 했다. 괜히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병문안을 갔다. 마침 잠들어 있는 경찰서장의 머리맡에 꽃다발을 두고 왔다. 이런 메모도 함께 남겼다.
나는 예전에 당신이 알던 그 사람이 아니오. 미안하게 됐소. 억하심정은 없었소. 빠른 쾌유를 비오.
식칼 아줌마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남녀의 차별이 없었고, 노소의 구별도 없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까지 깨끗하게 털었다. 폭력은 될 수 있는 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아구창 한 방 정도는 가볍게 날렸다. 저항이 거세거나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날렸지만, 대개는 기분 전환 삼아 그냥 한 방 날리곤 했다. 그렇게 아구창이 돌아간 사람들은 무조건 응급실로 실려갔고, 오늘내일하면서 사경을 헤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식칼 아줌마는 생계를 위해 유흥가 뒷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다. 곧 누군가가 나타났다. 식칼 아줌마는 평소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길을 막고 금품을 요구했다.
“얼마 있어?”
상대는 사장님 스타일의 중년 남자였다. 돈이 많아 보였다. 손목시계도 비쌀 것 같았다. 마디가 짧은 손가락에서 굵은 금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금니도 몇 개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진취적이군. 과감해. 요즘은 이렇게 역동적이고 공격적으로 장사를 하나? 마음에 들어. 나는 적극적인 게 좋아. 그래, 얼마야?”
남자는 가격부터 문의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양주의 알싸한 냄새와 남성용 향수의 매캐한 냄새가 골고루 풍겼다. 나이에 비해 자기관리를 잘한 것 같았다. 피부도 좋고, 몸도 단단해 보였다. 성공한 남자의 관록과 중후함, 여유로움까지 물씬 느껴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반면 식칼 아줌마는 당황했다. 그동안 겪어본 적 없는 돌발 상황이었다. 장사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무언가를 사려고 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하는지 가격을 묻고 있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는 얼마를 불러야 할지도, 뭘 팔아야 할지도 몰랐다.
“얼마냐니까? 장사 안 해? 장사 안 하면 나 그냥 간다?”
남자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그냥은 못 가!”
식칼 아줌마는 덥석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힘 조절을 하지 못했다. 남자의 손목을 잡으면서 필요 이상의 힘을 사용하고 말았다.
“아앗! 아파! 아파!”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바로 손목을 놨다. 그래도 통증이 심한지 남자는 손목을 어루만지며 계속 아픈 표정을 지었다.
“어디 봐.”
다행히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다. 외상의 흔적도 없어 보였다. 남자의 상태를 확인한 식칼 아줌마는 다시금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금품을 요구했다.
“엄살떨지 말고 돈 내놔!”
문득 살기가 느껴진 건 그때였다. 아니, 그것은 살기가 아니었다. 뜨겁고 끈끈하고 불쾌한 무엇이 식칼 아줌마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와우!”
남자가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며 몸을 흔들었다. 식칼 아줌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남자의 두 눈에서 활활, 걷잡을 수 없는 광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얼굴만 예쁘고 몸매만 착실한 게 아니었어. 멋져! 여리고 청초한 외모 속에 숨어 있는 와일드! 나 반했어. 이건 완전히 푸른 들판을 거칠게 질주하는 한 마리 야생마를 보는 기분이야. 퍼펙트. 완벽해! 전혀 길들지 않았어. 야생 그대로야. 마치 자기를 길들여줄 누군가의 손길을 오매불망 갈구하고 있는 느낌이야. 길들이고 싶어. 와우, 나 너한테 완전히 꽂혔어!”
남자는 흥분한 목소리로 미친 사람처럼 나불거렸다. 눈에 초점이 없는 뿅 간 얼굴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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