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59화>
남자는 헉헉,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음 말을 이었다.
“좋아, 좋아.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쳐. 오리발이나 내밀면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마저 무시한 채 쓰레기처럼 살아왔다고 치자고. 뭐, 어쩔 수 없잖아. 지나간 시간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아.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살 거야? 언제까지나 알량한 아마추어 근성으로 자본주의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면서 살 거냐고. 그건 안 돼!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반성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해. 썩어빠진 그 정신 상태부터 싹 다 뜯어고쳐야 해. 좋아, 오늘 내가 확실하게 한 수 가르쳐주겠어. 이 온몸으로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밤새도록 강의해주겠어.”
남자의 혀가 다시 입 안으로 들어왔다. 고기 프로펠러의 회전 속도도 좀 전보다 훨씬 빨라진 것 같았다. 《태장기공》을 몸에 익힌 식칼 아줌마였다. 수많은 주먹들을 물리치며 무림을 평정하기도 했다. 이 정도의 남자라면 손가락 하나로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냥 먼지 털 듯 툭툭 털어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는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남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튼튼한 동아줄처럼 식칼 아줌마의 몸을 꽁꽁 묶고 있는 것 같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실생활에 적용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본주의경제 질서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도 몰랐다. 썩어빠졌다는 꾸지람을 들을 때는 왠지 모르게 지난날의 인생이 부끄러워졌다. 여태껏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 같아 스스로를 반성해보기도 했다. 남자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요즘 세상은 정의나 의협심보다 기브앤드테이크다. 받은 만큼 줘야 한다. 알량한 아마추어 근성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식칼 아줌마는 자신의 혀를 남자에게 맡겼다. 몸도 같이 맡겼다. 다시 수문이 열리면서 엄청난 양의 침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 이러다 망가져버릴지도 몰라, 물침대에 누워서 이런 걱정도 했다. 어느새 남자는 식칼 아줌마의 바지를 내리고 있었다. 곧 팬티도 벗겼다. 남자의 허리가 다리 사이로 돌격해 들어올 때는 겁도 났다. 하지만 프로였다. 식칼 아줌마는 이를 악물며 참았다. 본격적인 행위에 들어간 남자의 몸 밑에 깔려서 식칼 아줌마는 생각했다. 망가져도 프로답게 망가지면 괜찮아. 왜냐하면 프로는 아름다운 거니까. 어느새 프로로 다시 태어난 식칼 아줌마는 남자의 박자에 맞춰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 아……!”
다음 날부터 식칼 아줌마는 투잡을 뛰었다. 장소를 옮기고 상대를 바꿔가며 삥도 뜯고 몸도 팔았다. 역시 세상은 기브앤드테이크였다. 부지런히 일한 덕분에 수입도 배로 늘었다. 삥을 뜯든 몸을 팔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힘들고 고된 건 사실이었지만 차곡차곡 쌓여가는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식칼 아줌마는 사는 보람을 느꼈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배를 곪는 일도 없어졌다. 소소와 아령을 위해 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휠체어도 하나씩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복수를 위해서였다.”
식칼 아줌마는 돌주먹을 잊지 않고 있었다. 소소와 아령을 불구로 만든 돌주먹을 잊을 수 없었다. 반드시 복수하리라 다짐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얼굴이 이미 노출된 상태라 접근이 불가능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게다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동안 무공 연마도 게을리해왔다. 내공도 많이 약해졌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정면돌파는 곧 개죽음을 의미했다. 돌주먹을 상대로 맞짱승부를 펼칠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돌주먹의 허를 찌르기로 했다. 방심한 틈을 노려 뒤통수를 치면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우선 돌주먹에게 접근해야 했다. 하지만 노출된 얼굴로 접근하는 것은 기름을 지고 불 섶에 뛰어드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식칼 아줌마에게는 예전과 전혀 다른 얼굴이 필요했다. 옷을 바꿔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액세서리로 잠깐 눈을 속이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싹 다 뜯어고칠 필요가 있었다. 전혀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철저한 프로 근성을 보여주리라, 다짐해보는 식칼 아줌마였다. 돌주먹에게도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뼈저리게 강의해주리라,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져보는 식칼 아줌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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