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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18 09:30 수정 : 2014.11.18 09:30

강태식 소설 <61화>



오전 7시에 기상. 매일 아침 8시에는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그로부터 10분 뒤였다. 배차 시간이 일정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집을 나선 느낌이었다. 바로 버스가 도착하면 돌주먹은 그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출근길이라 버스 안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차량 정체도 심했다. 하지만 돌주먹은 이어폰을 꽂고 여유롭게 음악을 즐겼다. 시계 한번 보지 않았다. 이미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 계산해놓은 것 같았다. 회사에 도착하면 8시 50분. 돌주먹의 사무실은 고층 빌딩 25층에 있었다. 직급은 차장이었다. 나이에 비해 빠른 진급이었다. 예상외로 능력 있는 인간 같았다. 업무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직장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부하직원들을 자상하게 챙겨주고, 상사들과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술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술은 취해서 싫고 담배는 매여서 싫다는 주의 같았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개인위생에 철저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손을 닦았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3분 내에 양치질을 했다. 헤어스타일은 항상 이 대 팔로 단정하게 빗고 다녔다. 옷도 멋이나 화려함보다는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고 다니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왠지 우등생 콤플렉스 같은 강박관념이 느껴졌다.

이렇다 할 취미생활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가끔 주말을 이용해서 극장에 가지만 영화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사람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자료 수집차 간다는 느낌이었다. 당구나 바둑 같은 잡기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마지못해 조금 배운 것 같았다. 도박과 노름에도 문외한이었다. 화투나 카드를 만지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회식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회사에서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직행했다. 따로 만나는 여자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모여 흥청망청하지도 않았다. 친구 관계도 여자관계도 백지처럼 깨끗했다. 돌주먹은 자기 전까지 거실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이용해 세탁이나 청소, 설거지 등의 집안일을 해치우기도 했다. 매일 밤 12시, 돌주먹은 잠자리에 들었다.

이상이 식칼 아줌마가 조사한 돌주먹의 전부였다. 정리하고 나니 감탄이 나올 정도로 스탠더드한 생활 계획표가 그려졌다. 바른생활 사나이의 전형이었다. 가지를 전부 쳐내고 줄기만 남겨놓은 느낌이었다. 너무 무미건조하고 삭막했다. 술 담배도 안 하고, 노름이나 잡기에도 취미가 없다. 그렇다고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왠지 교도소 죄수들의 하루 일과표를 열람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갑갑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 식칼 아줌마는 의아했다. 일상은 수많은 스트레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걸 그때그때 풀어주지 않고 대책 없이 쌓아두면 결국에 가서는 고칠 수 없는 마음의 병이 된다. 미쳐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심한 경우 자살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수구를 마련해두고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쏟아버린다. 운동이나 취미 활동 정도가 건전하면서도 일반적인 하수구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돌주먹에게는 그런 하수구가 없었다. 쌓이면 쌓이는 대로 그냥 방치해두는 것 같았다. 식칼 아줌마의 눈에도 그런 돌주먹이 위험해 보였다.

식칼 아줌마는 돌주먹의 엄청난 파워와 상식에서 벗어난 스피드를 떠올렸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강력한 힘이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잊을 수 없었다. 그때를 복기할 때마다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했다. 분명 무공을 몸에 익힌 동작은 아니었다. 파워와 스피드를 앞세운 공격이 전부였다. 너무 변칙적이고 비문법적이었다. 그래서 당했고, 당하면서도 이유를 몰랐다. 문파도 비급의 종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돌주먹에게는 문파가 없었다. 비급을 익히지도 않았다. 돌주먹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꼭짓점까지 차오른 일상의 스트레스가 한순간 펑 하고 터지면서 발생한 악의 에너지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칼 아줌마의 눈에는 지금도 돌주먹이 악의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며 몸을 부풀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돌주먹은 또다시, 그것도 조만간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서운 일이었다. 돌주먹은 정말 시한폭탄 같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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