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
강태식 소설 <65화>
다음 만남은 일주일 후에 가졌다.
“네가 처음이야.”
“정말 내가 첫 여자야?”
“응, 죽지 않은 첫 여자야.”
여자관계가 깨끗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돌주먹의 희생양이 된 여자들을 생각하자 잊고 있던 의협심이 되살아났다. 반드시 응징해야 해! 다시 한번 결의를 다져보는 식칼 아줌마였다.
이후 식칼 아줌마는 돌주먹의 섹스 파트너가 되었다. 모텔에서 만나 기절할 때까지 섹스를 하고 다음 날 헤어지는 식의 만남이 계속되었다. 돌주먹과 한번 만나고 나면 적어도 사나흘 동안은 자리에 누워 끙끙 앓아야 했다. 링거도 맞고 한약도 먹었다. 돌주먹과 함께 모텔로 들어갈 때는 매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만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반드시 꼭 한 번은 오고야 만다. 식칼 아줌마는 그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돌주먹과의 한 라운드 한 라운드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우리 합칠까?”
자연스럽게 동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조촐하게나마 식도 올리고 혼인 신고서에 도장도 찍었다. 모든 일이 착착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웨딩드레스도 그랬다. 잠깐 입었다 벗은 느낌이었다. 신혼여행도 어디를 갔다 왔는지, 거기서 뭘 했는지 기억에 없었다. 어느새 식칼 아줌마는 앞치마를 두른 새댁이 되어 있었다. 급류에 휘말려 태평양까지 떠내려온 느낌이었다. 모든 게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초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돌주먹의 아내로 위장해 복수의 그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오산이었다. 나는 미련하고 어리석었다.”
올해로 식칼 아줌마는 결혼생활 12년 차 주부가 되었다. 나이도 어느새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세월만 빠르게 흘러갔다. 요즘은 인생무상이라는 말을 피부로 느끼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고…….
“복수는요?”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일반적인 결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는 결혼을 생활이라고도 하고, 현실이라고도 한다. 사랑의 무덤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개중에는 안정이나 권태 같은 말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의 결혼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상대는 악의 에너지로 똘똘 뭉친 돌주먹이었다. 땅이 흔들리고, 물건들이 부서지고, 조명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신혼 초에는 거의 매일 밤 당했다.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신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갔다. 다리가 떨려서 서 있을 기력조차 없었다. 걸레처럼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었다. 발가락 하나, 손가락 하나 꼼지락거리기 힘들었다. 씻는 것도 먹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외출 같은 건 바다 건너 먼 나라 이야기처럼 까마득하기만 했다. 호흡기만 안 달았다 뿐이지 말 그대로 식물인간 같은 생활이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 돌주먹이 출근하고 없으면 멀뚱멀뚱 천장 벽지만 바라보며 눈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