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11.25 09:23 수정 : 2014.11.25 09:23

강태식 소설 <66화>



결혼 후에도 돌주먹은 꼬박꼬박 정시에 퇴근해서 곧장 집으로 왔다. 식칼 아줌마를 화장실로 옮겨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겨주는 것도, 침대에 누워 있는 식칼 아줌마에게 밥을 떠먹이는 것도, 모두 돌주먹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이, 귀찮다는 불평 한마디 없이 돌주먹은 이 모든 일들을 순서에 따라 착착 처리해나갔다. 마치 감정이 없는 로봇 같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뭔가를 해준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공정과 절차에 따른 신속한 마무리가 전부였다. 식칼 아줌마를 다루는 돌주먹의 동작은 그만큼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했다.

“너는 그게 어떤 기분인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돌주먹은 하루에 한 번꼴로 식칼 아줌마를 씻겼다. 결벽증 때문이었다. 돌주먹은 청결한 몸을 원했다.

우선 뜨거운 물에 10분 정도 담가둔다. 그 10분 동안 이태리타월에 보디 샴푸를 묻혀 거품을 내고 때수건도 미리 준비해둔다. 욕실 바닥에 서너 장 정도의 수건을 충분한 넓이로 깔아두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때가 적당히 불었다고 판단되면 물에서 꺼내 바닥에 깔려 있는 수건 위에 잘 펴서 눕힌다. 때를 밀 때는 먼저 전면이나 후면 중 한쪽을 미리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아래에서 위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이렇게 확실한 진행 방향을 정해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깨에 힘을 주고 밀면 능률이 떨어질뿐더러 체력소모도 심해진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같은 곳을 여러 번 민다는 기분으로 움직이면 된다. 한꺼번에 넓은 면적을 해치우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좁은 면적을 차근차근 밀어나가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요령이다. 한 면을 끝냈다면 다른 면으로 넘어간다. 이때도 공정은 마찬가지다. 때 작업을 끝내기 전에 어디 지나친 곳은 없나 꼼꼼히 체크하는 것도 빠뜨려서는 안 될 사항 중 하나다. 특히 겨드랑이나 가랑이, 엉덩이 살이 맞물려 들어간 곳은 지나치기 쉬운 곳이니만큼 다시 한번 들춰서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다음은 몸에 거품을 낼 차례다. 방식은 때를 밀 때와 동일하다. 몸을 덮고 있는 거품은 물로 제거한다. 이제 남은 공정은 건조 작업뿐이다. 구석구석에 있는 물기를 남김없이 닦아내야 한다. 남아 있는 거품과 물기는 피부염이나 악취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때로는 이것들을 먹이 삼아 곰팡이가 번식하는 경우도 있다. 건조도는 손가락으로 체크하자. 부드럽게 쓸린다는 정도의 느낌이면 안심해도 좋다. 이상 작업 끝! 수고하셨습니다.

욕실에서 침대로 옮겨지면 또다시 범해졌다. 매일 그렇게 당하면서도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보지 못했다. 기력을 회복할 틈도 주지 않았다. 땅이 흔들리고, 물건들이 부서지고, 조명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몸이 망가지면서 마음도 약해졌다. 소식이 끊긴 소소와 아령의 안부가 궁금했다. 결혼식 전날, 울며 매달리던 두 동생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사형,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시오.”

“큰언니 가면 싫어. 가지 마.”

사랑하는 동생들을 두고 가야 하는 식칼 아줌마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기는 듯 아프고 괴로웠다. 하지만 그때는 대의가 중요했다. 인정에 얽매이면 큰 뜻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 대기실에 앉아 있던 식칼 아줌마는 엄한 목소리로 두 아우의 나약한 마음을 꾸짖었다.

“대의 앞에서 일신의 안위와 행복을 생각함은 협객의 소의가 아닐 것이다. 아우들은 괜한 눈물로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마라.”

그렇게 이별한 소소와 아령은 어떻게들 지내고 있을까? 식칼 아줌마는 두고 온 동생들을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강태식의 <가드를 올려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