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67화>
“하지만 제일 비참한 사람은 나였다.”
인간 이하의 생활이었다. 무당 3대협의 리더에서 순식간에 섹스돌로 전락했다. 엄청난 낙차였다. 그만큼 충격도 컸다. 가끔씩 거울 앞에 설 때도 그런 낙차에 따른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망가지다니, 이렇게까지……. 눈가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이 악몽처럼 흘러갔다.
재작년부터 횟수가 줄어들었다. 몸으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음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씻는 것도 먹는 것도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멀리 나가지만 않으면 잠깐씩 외출해서 바람도 쐴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무리를 하거나 충격을 받으면 바로 현기증이 밀려왔다. 실제로 몇 번은 정신을 잃고 기절한 적도 있었다. 10년 만에 찾아간 대중목욕탕에서도 그랬다. 옷을 벗고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쟀다. 20킬로그램이었다. 식칼 아줌마는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돌주먹은 내 모든 걸 빼앗아갔다. 협객으로서의 생명과 사랑하는 두 아우, 그리고 몸무게까지…….”
돌주먹에게 범해지는 동안 몸무게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마교에서 사용하는 비기 같았다. 용서할 수 없었다. 자기를 이렇게 만든 돌주먹에게 다시 한번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내공도 바닥이었다. 이대로라면 복수는 무리였다. 식칼 아줌마는 일단 망가진 몸부터 추스르기로 했다.
섬유질과 단백질이 균형을 이룬 식단으로 축난 체력을 보강해나갔다. 몸에 좋다는 보양식이라면, 그게 뭐든 가리지 않고 먹었다. 체중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하루하루 몸이 달라지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근육에 힘이 붙는 느낌이었다. 실전의 그날을 대비해 기본적인 동작을 연마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성남에 있는 개시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역세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전철역까지는 도보로 가도 5분 안팎이다. 성남까지 가기 위해서는 A호선에서 B호선으로 갈아타고, B호선에서 다시 C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C호선 환승역에 도착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채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넓은 역사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나른한 표정이었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스크린 도어 앞에 서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방향을 바라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딱 두 명만 빼고 말이다.”
그 둘의 위치는 역사 플랫폼 저 끝이었다. 너무 멀어서 성별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다만 그들이 타고 있는 두 대의 휠체어와, 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맹인용 지팡이는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반신 불수에 앞까지 못 보는 맹인들 같았다. 딱한 마음에 자꾸 눈길이 갔다. 보면 볼수록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와 같은 대화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네년은 상도덕도 없냐? 남의 구역에서 영업을 뛸 거면 사전허락을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이렇게 개념이 없으니까 네년이 쌍년 소리를 듣는 거야.”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플랫폼 내벽에 부딪히며 공명을 일으켰다.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분노와 살기도 느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쪽으로 쏠렸다.
“누구 마음대로 네년 구역이야? 그리고 내가 왜 쌍년인데? 대갈빡을 확 쪼개버릴라!”
이 목소리의 주인공 역시 젊은 여자였다. 하지만 듣기 괴로울 만큼 강퍅하고 걸걸한 음색이었다. 이번에도 식칼 아줌마는 강한 살기를 감지하고 긴장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구역에 들어와 몰래 영업을 한 모양이었다. 지하철 앵벌이들이 벌이는 전형적인 밥그릇 싸움 같았다.
“씨발, 쌍년이 째진 주둥이라고 아무 말이나 막 하네.”
“맞은 지가 오래돼서 분위기 파악이 안 되지? 죽도록 패줄 테니까 피똥 한번 싸볼래?”
살벌한 욕설들이 탁구공처럼 숨 가쁘게 이쪽저쪽을 오가고 있었다. 이쪽에서 스매싱을 날리면 저쪽에서도 스매싱으로 맞받아쳤다. 당장에라도 물고 뜯는 개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욕설의 강도도 점점 심해졌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앵벌이 듀엣의 모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입을 여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부모와 함께 있던 여아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아-앙!”
마치 적기의 공습을 알리는 경보 사이렌 같았다. 이를 신호로 앵벌이 중 하나가 상대의 정수리를 향해 맹인용 지팡이를 날렸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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