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68화>
“안 돼!”
식칼 아줌마는 자기도 모르게 일갈 비명을 내질렀다. 바람을 가르며 내리꽂히는 맹인용 지팡이의 엄청난 내공 때문이었다. 고강한 무공을 짐작할 수 있는 필살의 일격이었다. 저런 공격이 정수리에 들어가면 살아남지 못한다! 식칼 아줌마는 반사적으로 질끈 두 눈을 감았다.
“탁!”
다음 순간, 맑고 경쾌한 소리가 역사 가득 울려 퍼졌다. 천천히 눈을 뜬 식칼 아줌마는 플랫폼 저쪽 끝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거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막았다! 정수리로 날아드는 맹인용 지팡이의 공격을 다른 맹인용 지팡이가 정확하게 받아냈다! 사람들은 놀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식칼 아줌마도 그중 한 명이었다.
“탁, 탁! 타닥, 타닥, 타다닥!”
엄청난 혈투였다. 이쪽의 맹인용 지팡이와 저쪽의 맹인용 지팡이가 허공에서 몸을 맞부딪히며 맹렬한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관우 운장의 청룡언월도와 장비 익덕의 장팔사모가 한판 자웅을 가리기 위해 경합을 벌이는 듯한 위용 그대로였다. 두 대의 휠체어 바퀴가 플랫폼 바닥을 할퀴며 삑, 삑, 삑, 사나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용과 범이 어우러져 일대 격전을 벌이는 듯, 한 치의 우열도 가릴 수 없는 말 그대로의 호각지세였다. 노한 파도가 되어 천지를 뒤엎을 것처럼 휘몰아치다가도, 다음 순간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호수가 되어 잔잔하게 가라앉는 두 앵벌이 검객의 몸놀림. 그것은 차라리 한 편의 현란한 검무를 보는 듯 아름답기까지 했다.
“와~아!”
“오~오!”
맹인용 지팡이가 허공을 가르며 몸을 맞부딪힐 때마다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커다랗게 놀란 눈으로, 혹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탄성을 연발했다.
반면, 식칼 아줌마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고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벌써 십수 년이나 지난 과거의 장면들이 식칼 아줌마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것은 목검을 쥐고 검술을 연마하던 소소와 아령의 모습이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사형을 이기고 말겠습니다.”
검술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던 소소였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혀 있는 구슬땀을 닦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머, 언니. 이런 곳에 꽃이 피어 있어요.”
검술 연마 중간의 쉬는 시간. 시멘트 바닥을 뚫고 피어난 민들레꽃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던 건, 유독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린 막내 아령이었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식칼 아줌마는 붉어진 눈시울을 소매로 훔치며 고개를 돌렸다.
“누워 있던 용이 하늘로 오른다는 ‘와룡등천’과 겨울밤 달빛을 가를 만큼 빠르고 예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참월신검’. 모두 《태장기공》에 나와 있는 무당파 극강의 검술이었다. 그랬다. 플랫폼 저 끝에서 구역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던 두 앵벌이는 소소와 아령이었다. 아주 오래전, 복수라는 미명 아래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버린 사랑하는 내 아우들이었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목이 터져라 불러보고 싶었지만, 달려가 부둥켜안고 울고도 싶었지만,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쫓기듯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처참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소소와 아령의 모습 때문은 아니었다. 식칼 아줌마가 도망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우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소소와 아령은 맹인 행세를 하며 지하철 앵벌이로 하루하루 구차한 목숨을 연명해가고 있었다. 식칼 아줌마는 두 아우들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자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아우들 앞에 나설 수 없었다.”
식칼 아줌마는 C호선 환승역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개시장은요?”
“개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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