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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28 09:12 수정 : 2014.11.28 09:12

강태식 소설 <69화>



지하철 안에서도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소소와 아령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몇 번인가는 신음하듯 작은 목소리로 소소와 아령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했다.

“소소야. 아령아…….”

지하철역을 나와서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걸었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입도 반쯤 헤 벌어져 있었다. 걸을 때도 휘청휘청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땅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렇게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길 양옆으로 다닥다닥, 허름한 다세대 주택들이 어깨를 접고 빽빽하게 붙어 서 있었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면서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현기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현기증이 아니었다.”

발이 1센티미터쯤 바닥에서 떠 있었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에 고도가 점점 상승했다. 1층을 지나 2층으로, 2층을 지나 3층으로 식칼 아줌마의 몸은 뜨거운 공기를 가득 채운 열기구처럼 계속 하늘 높이 올라갔다. 마침 다세대 주택의 외벽에 설치되어 있는 가스 배관이 손에 잡혔다. 식칼 아줌마는 그걸 타고 다행히 내려올 수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체중계에 올라가서 몸무게를 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0킬로그램이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식칼 아줌마는 몸무게 제로의 붕이 되었다.

“돌주먹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몇 년 전, 집 근처에 있는 이 아지트를 찾게 된 것도 돌주먹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체육관인 줄 알았다.

“체육관은 아니지만 마음 편한 대로 써.”

반갑게 맞아주는 스마일 영감님의 말을 듣고 결심했다. 매트도 깔려 있고 샌드백도 매달려 있었다. 회비가 없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무공을 연마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 같았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내공도 많이 회복됐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다.”

식칼 아줌마는 복수만 하면 모든 게 원상 복귀될 거라고 믿고 있다.

“소소와 아령을 다시 만날 수도 있고, 무당 3대협도 화려했던 예전의 명성 그대로 재결합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몸무게도 다시 돌아올 거라는 게 식칼 아줌마의 생각이다.

“돌주먹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 예전 같지 않다. 많이 약해졌다. 요즘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도 많이 빠졌다. 복수의 그날이 멀지 않았다.”

오늘도 식칼 아줌마는 아지트에 나와서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샌드백을 상대로 맹훈련 중이다. 팡, 팡, 팡! 주먹을 지르고 발차기를 날릴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눈물겹다. 구슬땀이 흐르는 식칼 아줌마의 얼굴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참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잠깐, 무당 3대협 시절의 모습은 어땠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한다.

“김장을 많이 했다. 네 것까지 했으니까 다음에 올 때는 김치통 가져와라.”

몇 번은 김치를 얻어먹은 적도 있다. 부침개나 잡채 같은 걸 가지고 와서 멤버들과 함께 나눠 먹기도 한다. 외모와는 달리 마음만은 참 넉넉하고 따뜻한 아줌마다. 그러는 사이에 정이 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레퍼리고, 저렇게 열심히 주먹을 날리고 있는 식칼 아줌마가 마지막 12라운드까지 버텨준다면, 그래서 판정까지 가게 된다면, 점수 같은 건 깡그리 무시한 채 링 위에 서 있는 식칼 아줌마의 손을 번쩍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힘내세요, 식칼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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