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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1 10:06 수정 : 2014.12.01 10:19

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강태식 소설 <70화>



8.

오후에 잠깐 회사에 다녀왔다. 마 대리에게는 그 전에 미리 전화를 걸었다.

“언제 갈 거야?”

“어딜?”

자다 일어났는지 말길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디긴 어디야, 회사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이제 회사에 갈 필요 없잖아.”

그렇게 됐다. 그래도 한 번은 가야 할 일이 있었다.

“받으러 안 갈 거야?”

“뭘?”

밀린 5개월 치 월급과 퇴직금 대신 바이브레이터를 받기로 했다.

“난 오전에 받아왔는데.”

약속하고 달랐다. 전날 분명히 같이 가서 받아오자고 새끼손가락까지 걸었더랬다.

“미안. 깜빡했어.”

화도 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외출 준비를 했다.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구두도 신지 않았다. 동네 목욕탕이나 슈퍼에 잠깐 다녀올 때처럼 편안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발목에 쇠공을 찬 것처럼 무거웠다.

오후의 거리는, 역시 낯설었다. 텅 빈 버스에 앉아 차창 밖을 바라보는 동안, 이제 이쪽 노선의 버스를 타는 일도 없겠지, 나도 모르게 쓸쓸한 생각에 젖어들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3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후-유,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보면 아련하고, 어떻게 보면 지옥 같은 자위회사에서의 3년 때문이었다.

내가 한때 몸담았던 MC, 일명 자위회사는 오래전부터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판매실적 부진에 따른 적자누적이 주원인이었다.

“합격!”

3년 전,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당시 자위회사는 새로운 판매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야심 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고, 마침 면접장에 나타난 이 몸을 항문이 건강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식 채용했다.

“너도 합격!”

나 말고도 항문 건강에 이상이 없는 응시생이 한 명 더 있었다. 그게 바로 마 대리였다. 그러니까 마 대리와 나는 입사 동기인 셈이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정식으로 인사도 했다.

“아무튼 반가워.”

내가 만만해 보였던 탓일까. 마 대리는 초면부터 말을 놓는 기염을 토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선방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말로만 듣던 초반 기 싸움 같았다.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반가워.”

같이 반말로 나갔다. 순간 마 대리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너 몇 살이야?”

“너는 몇 살인데?”

서로의 나이를 물어보다가 우리는 동시에 민증을 깠다. 마 대리와 나는 동갑이었다.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커피를 마셨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마 대리였다.

“너 그거 알아?”

몰라서 모른다고 대답했다.

“우린 있잖아. 내일부터 샌드백이야.”

샌드백? 그러니까 모래주머니? 체육관 천장에 매달린 채 매일 날아오는 강펀치를 착실하게 받아내는 그 샌드백?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기선제압을 위한 초반 기 싸움의 2탄 정도라고 생각하며 무시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마 대리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다음 날부터 샌드백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리 깨지고 저리 치이면서 3년이라는 긴 세월을 버텨왔다. 하루하루가 지옥의 연속이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천장에 매달렸다. 펑, 펑, 펀치가 작렬할 때마다 내 몸은 공중에 매달린 채 삐걱삐걱 앞뒤로 흔들렸다. 가드 같은 건 올릴 줄 몰랐다. 신선해 씨처럼 맞받아치지도, 마 대리처럼 건들면 죽은 척하지도 못했다. 약한 펀치에도 매번 펑, 펑,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타격감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치면 칠수록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는 샌드백이었다. 결국 나는 신선해 씨와 마 대리의 몫까지 세 사람분의 샌드백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당연히 날아드는 펀치도 샌드백 세 개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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