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71화>
그사이에 새치가 늘고 주름이 생겼다. 눈가에는 매직으로 그려놓은 듯 선명한 다크서클 라인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발기부전 증상이었다. 바이브레이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생체실험을 업무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바이브레이터를 몸속에 넣을 때도, 그 느낌을 보고서에 기록할 때도 사무적인 자세로 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몸이 반응을 보였다. 전원을 켜면 기분이 이상했다. 몸 안에서 바람이 불었다. 잔잔했던 호수가 물결을 만들고, 고요했던 나무들이 좌우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단계를 올릴수록 바람은 거세졌다. 물결은 파도로 변해 바위를 때리고, 나무들도 몸에 생채기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산 제물이 되어 펄펄 끓어오르는 마그마 속으로 던져지는 기분이었다.
“아……!”
나도 모르게 뜨거운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곤 했다. 그때마다 타락해버린 항문이, 더럽혀진 몸뚱이가 수치스럽고 원망스러웠다. 정체성 혼란에 괴로워하며 강소주를 마시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발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나이의 가슴에 탕탕, 대못이 박히는 처절한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그것은 서지 않았다. 포르노를 보고 도색 잡지를 넘겼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일어날 줄 몰랐다.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보며 나는 매일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왠지 그것에게 죄를 진 것 같았다.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한 손에 그것을 부여잡고 오열을 토했다.
미안해. 너한테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것은 대답하지 않았다. 푹, 안쓰러운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섯 달 전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생활이 어려워졌다. 카드로 카드를 돌려 막으며 버텼다. 현금 서비스도 한도액까지 받았다. 우편함 앞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 수북이 쌓여 있는 공과금 고지서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월급이 언제 나오는 거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나도 몰라.”
추 부장은 무책임하게 한마디 툭 던지고 자리를 피했다. 그나마 변명이라도 하는 인간은 용 과장뿐이었다. 위기가 기회라는 둥,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둥,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그럴싸한 말들을 휘황찬란하게 동원하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조금씩만 참고 희생하자고. 이 고비만 넘기면 돼. 그때부터는 탄탄대로야. 아닌 말로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올라봐. 자네들 의리를 모른 척하겠어? 나부터도 안 그래. 우리 회사가 의리 빼면 시체라는 건 자네들도 알잖아. 지금은 혹독한 겨울이지만 곧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오면 말이야, 전무나 최소 부장 자리 하나씩 착착 차고앉을 사람들이 바로 자네들이야. 부하직원 거느리면서 억대 연봉 받는 것도 물 건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니까. 두고 봐. 판도라의 상자처럼 아직 희망이라는 불씨는 꺼지지 않았어.”
용 과장의 일장 연설에 대한 신선해 씨의 소견은 다음과 같았다.
“감언이설이야. 스프링클러 주특기잖아.”
반면 마 대리에게는 소견이랄 것도 없었다.
“난 그냥 밀린 월급이나 받고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괜히 이유 없는 술자리만 늘어났다. 단합 대회다, 아이디어 회의다, 하면서 이상한 명분 아래 매일 술을 퍼마셨다. 출근해서도 점심시간까지는 다들 비몽사몽이었다. 너무 어두웠다. 내일의 태양 같은 건 절대 뜨지 않을 것 같았다. 사우나로 출근하는 추 부장, 모든 걸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용 과장, 하는 일도 없으면서 바쁜 척하는 마 대리, 건너가지 마시오, 빨강 신호등 신선해 씨.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난파 직전 광기에 휩싸인 채 갑판 위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선원들 같았다. 자위회사가 바로 그 난파선이었다. 미치광이 군단을 태운 채 예정된 막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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