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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3 09:43 수정 : 2014.12.03 09:43

강태식 소설 <72화>



그리고 어제가 자위회사의 마지막 날이었다. 대표이사는 종적을 감추고, 회사는 최종 부도판결을 받았다. 합병이나 흡수가 아닌 말 그대로의 해체였다. 한순간 일자리가 날아가버렸는데도 그냥 올 게 왔다는 느낌이었다. 못 받은 월급이 걱정됐지만, 왠지 모르게 홀가분한 마음도 있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웃는 얼굴로 끝까지 쿨한 자세를 견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앞이 캄캄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경기 종료 1분 전, 상대 팀 골문을 향해 날린 회심의 장거리 슛. 어? 잠시 대기. 그건 축구공이 아니라 제 밥그릇인데요. 하지만 냅다 슛! 하늘 멀리 날아가는 내 밥그릇을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으면 이런 처참한 기분이 들까?

“잘됐네. 안 그래도 때려치울 생각이었는데.”

신선해 씨는 최후의 그 순간까지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내일부터 다른 데 알아봐야지, 뭐.”

구직 선언을 하며 돌아서는 마 대리의 의연한 뒷모습도 사뭇 존경스러웠다.

“언젠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때는 내가 술 한잔 살게.”

한편 비장한 표정으로 멋진 대사를 날리는 용 과장은 벌써 다른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둔 낌새였고, 그 옆에 추 부장은,

“아프리카 쪽으로 이민 갈 생각이야. 아프리카에서 갈빗집 운영하는 게 어릴 적 꿈이었거든.”

꿈에 부푼 얼굴로 뒤늦게 자신의 정체를 자백했다.

“너는 어쩔 거야?”

모두들 그렇게 물었다.

나는? 글쎄…… 나는 어쩌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빼꼼, 사무실 문을 열고 안에 누가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생각했다. 신세 한탄을 하며 또 한 번 처량해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텅 빈 사무실을 보는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복받쳤다.

책상은 이미 전부 빠지고 없었다. 집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 몇 개가 열려 있었다. 이면지나 종이컵 같은 쓰레기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깜짝 놀랄 만큼 넓어 보였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 같았다. 어디선가 세찬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처음 알았다. 황량한 공간은 그걸 보는 사람의 마음도 황량하게 만든다는 것을.

바이브레이터 박스는 사무실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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