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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5 09:21 수정 : 2014.12.05 09:21

강태식 소설 <74화>



식기건조대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벽에 걸려 있는 행주를 볼 때마다 사람이 그리워지곤 한다. 하나, 둘, 셋, 그릇이 몇 개인지 숫자를 세면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하나, 둘, 셋, 젓가락은 몇 개나 되나? 개수를 세고 있노라면 후-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누구든 좋다. 목소리를 듣고 싶다.

따르릉, 따르릉.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착신음이 울린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응, 나야. 잘 지내?

대뜸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끔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보는 스마일 영감님이다. 잘 지내느냐는 말에 울컥하고 눈물이 복받친다. 잘 지낸다고 대답하고 싶다. 하지만 직장을 잃었다. 밀린 월급 대신 받은 게 바이브레이터 열 박스다. 그리고 지금은 부엌에서 생활하고 있다. 잘 지낸다는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어쩐 일이세요, 영감님?”

안부에서 용건으로, 태연한 척 말을 돌렸다. 하지만 역시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의 관록은 속일 수 없나 보다.

“기운 내. 사는 게 원래 힘든 거야.”

한순간 멍해진다. 강펀치 한 방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다. 코끝이 찡해지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아……. 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든 왈칵, 입술을 깨물며 참아왔던 눈물이 수문을 개방한 듯 쏟아질 것 같다.

“나 사실 한 건 했잖아.”

다행이다. 영감님이 들뜬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아무도 몰래 살짝,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자그마치 30센티미터짜리 대어야. 줄자로 직접 재봤어. 굵기도 엄청나. 황금 빛깔 월척이라고. 너한테 보여주려고 변기에 물도 안 내렸잖아. 어때, 보러올래?”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식기건조대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람을 그립게 만든 행주 때문일 수도 있다. 우-웅, 냉장고 소음이 쓸쓸한 바람 소리처럼 마음속 깊은 거기를 할퀴고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튼 혼자 있기 싫었다. 외로움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영감님의 거대 대변을 둘이서 나란히, 깊이 있게 감상하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빛깔이 예술이지, 정말 대단하시네요, 영감님과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촌평도 나누고 싶었다.

“갈게요.”

“응, 와. 대신 빨리 와야 해. 안 그러면 물에 다 풀어져버려.”

탈칵,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건장한 대변이 이렇게까지 큰 힘이 될 줄이야, 예전에는 까맣게 몰랐다. 30센티미터짜리 굵고 튼튼한 동아줄을 두 손으로 꽉 틀어잡은 기분이었다. 그날 나는 영차영차 그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 영감님을 만났다.

잘 왔어. 멋진 거 보여줄 테니까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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