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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8 09:31 수정 : 2014.12.08 09:31

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강태식 소설 <75화>



“대한민국에서 1년 동안 실종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알아?”

글쎄요…….

“정식으로 실종신고가 되는 건 그중의 몇 퍼센트일까?”

저야 모르죠.

“신기하지, 그 많은 사람들이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게. 그런데 그렇게 사라져버린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혹시 이런 거 생각해본 적 있어?”

아마 없을걸요.

아지트의 녹색 매트리스 위에는 종이 소주잔 두 개와 안주로 딴 참치 캔 하나, 나무젓가락 두 짝이 놓여 있다. 소주 두 병을 마시고 반병을 더 마셨으니까 벌써 소주 두 병 반째다.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른다. 영감님의 얼굴도 잘 익은 홍시처럼 붉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마셨다.

아지트에 도착하자마자 영감님을 따라 화장실로 직행했다. 변기 속을 들여다보는 순간 앗!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 믿을 수 없는 크기였다. 굵기도 굉장했다. 아무리 항문 건강에 자신이 있는 나지만 저런 걸 싸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영감님 괜찮으세요?”

“응, 나는 괜찮아.”

기백 같은 게 느껴지는 대변이었다.

“냄새도 안 나.”

기품이 있는 대변이라 냄새도 안 난다고 했다.

“멋지지?”

“멋지네요.”

이런 건 평생 한 번 싸기도 힘들다는 둥, 역시 인생을 오래 산 보람이 있다는 둥, 영감님의 자랑은 계속 이어졌다.

“이제 그만 보내주자. 물에 풀어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변기의 물을 내리면서도 영감님은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안녕.”

정화조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의 대변을 배웅하며 영감님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 역시 영감님 옆에 서서 바이바이 손을 흔들었다.

“아, 이별은 역시 슬픈 거네.”

영감님의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 술자리였다.

“이럴 때 보면 인생이라는 게 참 허무한 거야.”

“기운 내세요, 영감님.”

이렇게 슬픔에 빠져 있는 영감님을 위로하며 한 잔 두 잔 술잔을 비우는 사이에 빈 소주병만 늘어갔다. 안주가 부실한 탓에 취기도 그만큼 빨리 올랐다.

“한잔하고 잊어버리세요.”

“하지만 마음이 아픈걸.”

마음껏 징징대는 영감님이 부러웠다. 빈속에 술도 한잔 걸쳤겠다, 알딸딸하니 취기도 올랐겠다, 뒤돌아보면 눈물이 핑 돌고,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한데, 나도 마음껏 징징대고 싶었다.

“저도 마음이 아파요.”

“너는 왜?”

영감님이 멍석을 깔아주었다. 그래서 횡설수설, 변변치 못한 신세 한탄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가요, 영감님…….”

회사가 부도났다. 그래서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다섯 달 치 월급과 퇴직금 대신 물건을 받았다. 그리고 그게 지금 안방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엌에 뿌리를 내린 채 생활하고 있다……. 이런 넋두리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에 계속 술잔을 비웠다.

“천천히 마셔.”

영감님이 말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취하고 싶었다. 현실에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취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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