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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9 09:28 수정 : 2014.12.09 09:28

강태식 소설 <76화>



“그래서 어떤 물건을 받았는데?”

영감님이 받은 물건에 대해 물을 때는 약간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변까지 함께 감상한 사이였다. 부끄러울 게 없었다.

“바이브레이터 오백 개요.”

영감님이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술잔에 든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정말 골치 아프게 됐네, 주름진 얼굴에도 근심 어린 표정이 가득했다.

“그래서 어쩔 생각이야?”

개인적으로 판매할 생각이었다.

“어떻게?”

그게 문제였다. 처음에는 일단 몸으로 부딪혀보리라 각오를 다졌다. 가격파괴 전략으로 밀어붙이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세일즈의 기본은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다. 거울을 보며 너는 할 수 있다, 자신감을 키웠다. 하지만 제품의 성격상 고객들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좌판을 펼 수도 없고 전단을 돌릴 수도 없다. 매일 판매루트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떻게 팔지?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머리만 빠지고 표정만 어두워졌다.

“어떻게든 팔아야죠.”

“너도 참 큰일이다.”

현실은 안대 같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눈앞이 캄캄했다. 계속 한숨만 나왔다.

“그러지 말고 기운 내.”

“기운…… 내야죠.”

비록 기운을 낼 수 있을까? 회의적인 마음이 가득했지만,

“한잔하고 툴툴 털어버려.”

툴툴, 간단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현실 같지 않았지만,

“걱정 마. 잘될 거야.”

빈 술잔을 채워주며 토닥토닥 위로의 말을 건네는 스마일 영감님 덕분에 가슴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도 조금쯤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말이에요……. 왜 이렇게 된 거죠?”

바바리 입은 중년 남자의 뒷모습처럼, 문득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샌드백이 질겅질겅 시린 고독을 씹으며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술잔을 비웠다.

“붕 뜨는 거?”

그래서 시작된 이야기가 영감님의 실종인구 강의였다.

“어차피 대한민국 경찰력으로는 그 많은 실종 사건을 모두 커버할 수 없는 노릇이거든. 그래서 대개는 방치돼. 고작 전단 몇 장 붙이고 마는 수준이지. 우유갑 같은 곳에 사진이라도 실리면 그건 정말 행운이고……. 하지만 신고자의 사회적 위치나 실종 사건의 성격상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경우도 생겨. 그래서 일단 전담반 같은 게 편성되면 99퍼센트는 해결이야. 너무 싱겁다 싶은 정도로 간단하게 끝나는 사건들도 많아. 하지만 문제는 나머지 1퍼센트야. 백 명 중 한 명!”

미스터리물처럼 흥미진진했다. 공권력에 대한 비판의식도 녹아 있었다. 마치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심야 시간, 무언가 좀 더 밀도 있고 충격적인 전개를 기대하며 나는 영감님의 얼굴을 응시했다.

“이런 사람들은 죽었다 깨도 못 찾아. 정말 감쪽같거든. 물론 처음에는 척척 일사천리야. 목격자의 제보라든지, 이런저런 수색의 실마리들이 줄기에 매달린 고구마처럼 죽 딸려 나와. 하지만 그 고구마 줄기가 어느 순간 뚝 하고 끊어져버려. 정말 신기할 정도로 깨끗해. 하늘로 솟았다거나 땅으로 꺼졌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어. 말 그대로 증발해버린 거지.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영감님 말처럼 대부분의 실종 사건은 경찰이 나서면 금방 해결된다. 사는 게 힘들어서 가정을 버린 아줌마들, 사업하다 집까지 말아먹고 도피 중인 아저씨들, 그런 아줌마와 아저씨 밑에서 자라난 이 나라의 어린 새싹들………. 이렇게 실종된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철역이나 공원 같은 곳에서 노숙을 하게 된다. 이 나라에 살면서 현실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리는 백 명 중 한 명이다.

“우리 아빠가 그 백 명 중 한 명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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