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12.11 09:27 수정 : 2014.12.11 09:27

강태식 소설 <78화>



“아빠는 울고 있었어. 총성이 들려오는 쪽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이야. 마치 뭐에 홀리거나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지. 몇 번을 불렀는지 몰라.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하는 거야. 그때는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잘못됐구나 싶은 게 덜컥 겁이 나더라고. 표정을 보니까 너무 안 좋아. 우는 표정도 아니고, 웃는 표정도 아닌 거야. 그냥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정,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표정, 그런 표정의 아빠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마지막이기도 했고.”

과연 그때 꼬마 영감님의 부친은 어떤 심정으로 4․19라는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지식인의 고뇌 같은 거였겠지. 시대에 대한 울분, 패배감, 좌절감, 뭐 이런 거 말이야. 어쩌면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빠는 어쩔 수 없는 인텔리였어. 나서서 행동할 줄 모르는 룸펜 말이야. 그래서 거리가 아닌 옥상에 앉아 있었던 거고. 총성이 울릴 때마다 하나둘씩 쓰러져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던 거지. 자신의 무능력과 무기력을 저주하면서 말이야.”

몇 번의 총성이 더 들렸다. 콩을 볶는 소리처럼 따다닥. 하지만 꼬마 영감님은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총소리보다 몇 배는 더 신기한 장면이 꼬마 영감님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둥실둥실 떠오르는 거야. 거짓말 같았어.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

꼬마 영감님은 두 손으로 눈두덩을 사정없이 비비며 생각했다. 헛것이 보이나?

“하지만 그건 헛것이 아니었어. 아빠가 정말 붕,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던 거야. 기지에서 발진하는 로봇 태권브이처럼 말이야. 자세도 그대로고 표정도 그대로였어.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 파이프가 아빠의 입에 비스듬히 물려 있었지.”

하지만 그날, 꼬마 영감님이 올려다본 하늘은 왜 그렇게 높고 푸르렀던 것일까? 따다닥 콩 볶는 듯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지는데, 피로 물든 사람들의 비명과 탄식이 거리마다 가득한데, 어떻게 그날 하늘은 바다처럼 넓고 예쁘기만 했을까?

“흰 구름 하나가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어. 새하얀 요트처럼 유유히 말이야.”

아빠의 모습은 그 하늘 멀리, 아이가 놓쳐버린 풍선처럼 자꾸자꾸 작아져만 가고 있었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어느새 작은 점으로 변한 아빠의 모습을 꼬마 영감님은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파란 하늘만 남았다. 옥상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던 꼬마 영감님은 그제야 왕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무서웠어.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 후로는 정말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게 됐지 뭐야.”

한참 후에 울음을 그친 꼬마 영감님은 아빠가 날아가버린 저 먼 하늘을 향해 바이바이 손을 흔들며 작별의 말을 건넸다. 안녕, 아빠!

“이상하게 자꾸만 웃음이 나더라고. 누가 간질이는 것처럼 말이야. 현실감이 없다고 할까, 하얀 토끼를 쫓아 이상한 나라에 와버린 기분이었어. 경찰 아저씨들이 학생 형들을 총으로 쏴 죽이지 않나, 눈앞에서 아빠가 날아가버리질 않나…….”

그때부터 저렇게 계속 웃는 얼굴로 살아왔다는 스마일 영감님.

“어린 나이에 풍을 맞은 것도 아니고……. 너무 놀라서 안면근육이 그대로 굳어버린 거겠지. 의사 말이 수술을 해도 예전처럼 되지는 않는대. 표정 하나만 고르라는데, 무표정이나 우는 표정보다 그래도 웃는 얼굴이 낫잖아.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잖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살면서 덕도 좀 봤어.”

그래서 가만히 있을 때도, 잠을 자는 시간에도 안면근육에 힘을 주지 않으면 늘 저렇게 스마일 마크가 찍힌단다. 갑자기 찡하고 코끝이 울린다. 현충일 아침, 묵념 사이렌이 울릴 때처럼 뭉클해지는 기분이다.

그럼 영감님께서는 어쩌시다가?

“글쎄, 어쩌면 유전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너,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사망과 함께 유신정권이 붕괴된다. 같은 해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세력을 장악하고,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에는 5․17 쿠데타로 정권을 거머쥔다. 그다음 날이 바로 5월 18일이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날이다.

“그날 내가 광주에 있었거든.”

결국 영감님의 부친도, 지금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 영감님 본인도 이 나라의 부조리한 역사 때문에 몸무게를 잃어버렸다는 소리다.

“뭐,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럼 난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4․19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5․18 때도 그랬다. 응애응애 말도 제대로 못하는 갓난아기였다. 나는 왜 붕이 된 걸까?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강태식의 <가드를 올려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