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12.16 09:31 수정 : 2014.12.16 09:31

강태식 소설 <81화>



가끔 대걸레가 같이 있으면 살벌한 어휘들로 중무장한 구둣주걱 아저씨 나라의 언어를 일반인의 정서에 맞게 풀어서 통역해준다.

“밤에만 오지 말고 낮에도 좀 나오래요. 집에서 혼자 빈둥대는 것보다 나와서 같이 놀면 심심하지도 않고 얼마나 바람직하냐,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장기바둑 못 두면 보드게임도 좋고, 사람이 혼자 있으면 괜히 우울해지고 딴생각만 든다, 그러니까 나와서 같이 놀자…… 이러시는데요.”

너, 지금 방금 한 이야기 농담이지?

“정말이에요.”

하긴 화장실로 달려가지 않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구둣주걱 아저씨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입만 열었다 하면 공갈협박이다. 어둠을 토해내면서 주위를 암흑으로 뒤덮는다.

“너 오늘 교통사고 날 것 같다.”

다닐 때 차 조심하라는 당부다.

“일자리 잃고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 내가 여럿 봤다. 돈은 없지, 사는 건 힘들지, 한강에 가면 편해질 텐데, 약 한번 먹으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될 텐데……. 아무튼 사람 목숨처럼 허무한 게 없다.”

실업자가 된 다음부터는 또 이런 공갈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럴 때 마침 옆에 있던 대걸레가 통역해주는 걸 들어보면, 이 모든 공갈협박들이 실은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염려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너한테만 그렇게 들리는 거 아니야?”

“조금만 같이 지내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거예요. 이상한 건 오히려 아저씨라구요.”

그런가? 하긴 다른 멤버들은 대걸레의 통역 없이도 구둣주걱 아저씨의 공갈협박을 잘만 알아듣는 것 같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영감님의 경우, 그냥 손을 흔들며 웃어준다.

“걱정도 팔자셔. 자기 걱정이나 하세요.”

식칼 아줌마는 언제나 까칠하게 받아친다. 몸을 쓰지 않는 건 구둣주걱 아저씨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대걸레도 그냥,

“조심할게요.”

적당히 대답하고 만다. 결국 이 몸이 문제다. 구둣주걱 아저씨의 공갈협박에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신참이라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적응을 하고 못 하고는 신참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돌이켜보면 늘 그래왔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깨지고 밟혀온 세월이었다. 그러면서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그러다 결국 몸무게 제로의 인간인 붕이 되었다. 어쩌면 적응력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에게는 완충지대가 없다. 일단 충격이나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100퍼센트 위력을 발휘한다. 흔히들 말하는 맷집이 약한 스타일이다. 이래서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판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실업자가 된 것도, 이 땅에 발을 붙이며 살아가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강태식의 <가드를 올려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