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82화>
이곳, 붕들의 아지트가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바닥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이다. 하지만 고장 난 곳을 수리할 수 있는 곳도 여기뿐이다. 여기에서는 편안하게 쉬면서 면역력도 기를 수 있다. 그동안 완충장치가 없어서 고생했다면 여기서 완충장치를 장착하면 된다. 가장 밑바닥이기 때문에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 이제는 바닥을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 생각은 이렇게 해보지만,
“너네 부모님은 네가 여기서 매일 이러고 있는 거 알고 계시냐?”
구둣주걱 아저씨의 휘황찬란한 공갈협박을 들으면, 충격 100퍼센트다. 아직은 완충장치가 없기 때문에 눈앞이 아찔해진다.
“부모님들 걱정하시니까 자주 전화드리래요. 효도가 어려운 게 아니래요.”
말이 공갈협박이라 그렇지, 마음씨 하나는 정말 비단결이다.
며칠 전, 내 딱한 사정을 듣고 젊은 놈이 참 안됐다며 전폭적인 후원을 약속한 장본인도 바로 이 구둣주걱 아저씨였다.
“뭐, 바이브레이터? 너 그딴 물건 허가 없이 판매하다가 걸리면 바로 은팔찌 찬다.”
마침 대걸레도 같이 있었다. 우리나라 말로 통역해주었다.
“불법이니까 걸리지 않게 조심하래요.”
“그거 혹시 몸 안에서 펑 하고 폭발하는 거 아니야?”
듣고 있으면 자꾸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게 된다. 지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다.
“안정성은 확실한 건지 묻고 계세요.”
“그딴 거 하나 팔면 얼마나 뜯어내는 거야?”
“개당 얼만지, 판매가를 알고 싶으시대요.”
대걸레의 통역 없이 들으면, 이건 완전히 한창 빚 독촉 중인 흥신소 직원 말투다. 나는 개당 1만 원에 팔 생각이라고 판매가를 밝혔다.
“지금 그거 덤핑 아니야? 성인용품 전문점에서 알면 말로는 안 끝나.”
구둣주걱 아저씨는 너무 싸잖아, 그렇게 팔면 뭐가 남냐, 정도의 말을 이렇게 했다.
“일단 한 박스 가져와봐. 내가 대신 불법 판매해줄 테니까.”
이런 경위로 나는 오늘 바이브레이터 한 박스를 아지트까지 가지고 오게 되었다. 누구한테 팔 건지, 어떤 판매루트를 이용할 생각인지, 아직은 모든 게 짙은 안갯속에 쌓여 있다.
“계속 멍 때리고 있으면 확 경찰서에 찔러버린다?”
앗! 가져오랄 땐 언제고 갑자기 왜 이러세요, 구둣주걱 아저씨.
“뭐 해요? 물건 들고 당장 따라오라는데.”
바이브레이터를 팔아주겠다는 건 고맙지만, 따라가도 될까? 그게 어디든, 구둣주걱 아저씨와 단둘이 가는 건 솔직히 사양하고 싶다. 대걸레라도 옆에 있어준다면 힘이 될 것 같다.
“바람도 쐴 겸 같이 가자. 어차피 여기 있어봤자 할 일도 없잖아.”
“미안하지만 오늘은 할 일이 많아요.”
식칼 아줌마의 샌드백을 뒤에서 잡아주기로 했단다.
“영감님이랑 보드게임도 해야 한단 말이에요.”
약속이 있다는데 빼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언제까지나 도망쳐 다니면서 피하기만 할 테냐. 어쩌면 이번 기회가 내 약한 맷집을 보강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지도 모른다.
“영차!”
이렇게 해서 나는 바이브레이터 한 박스를 품에 안고 구둣주걱 아저씨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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