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83화>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을 내다본다. 인도와 건물과 상점들, 눈에 익은 도시의 풍경이 급류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그렇게 10분쯤 달린 버스가 고개 하나를 넘는다. 마치 문턱을 넘은 것 같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도, 거기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아까와는 천지차이다.
“뭐 해? 내려!”
일단은 구둣주걱 아저씨를 따라 내린다. 처음 와보는 곳이라 모든 게 낯설다. 규모가 작은 술집들이 길 양옆으로 죽, 자리가 비좁은 듯 어깨를 붙인 채 끼어 앉아 있다. 개중에는 키스방이나 귀청소방, 안마시술소처럼 19금 딱지가 붙은 성인 취향의 업소들도 눈에 띈다. 그 길을 구둣주걱 아저씨와 함께 걷는다. 아직은 대낮이라 그런지 개장 전 놀이공원처럼 한산하기만 하다.
그렇게 한동안 걷다가 뒷골목으로 접어든다. 대로변보다 한층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다. 성인용품 전문점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정체불명의 노래방과 해장국을 파는 식당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길 한복판에서 사납게 포효하는 호랑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백호 비즈니스 룸’의 마스코트다. 유흥가의 마이너리그 같다. 더러운 길바닥과 불쾌한 냄새, 어쩌면 이곳은 노쇠한 업소들의 마지막 집결지가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좀 더 들어가자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일자로 길게 뻗은 골목이 나타난다. 폭도 꽤 넓고 길바닥도 제법 깨끗하다. 여기저기에 주차되어 있는 고급 승용차들이 눈길을 끈다. 골목 양옆에 죽 늘어서 있는 건물들은 최근에 지었거나 새로 리모델링한 것들이다. ‘러브’나 ‘사이버’처럼 이국적인 상호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의 공간’이나 ‘그대와 나’처럼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한 상호들도 있다. 하지만 모양이나 분위기는 비슷비슷하다. 수십 개의 창문이 오와 열을 맞춰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각 창문마다 에어컨 실외기가 달려 있는 것도 이채롭다면 이채로운 풍경이다. 정문마다 쳐놓은 널찍널찍한 비닐 발은 고객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업소 측의 배려 같다. 아직은 성업 시간 한참 전이다. 그래서 지금 이 골목에는 철 지난 해변처럼 쓸쓸함이 감돈다.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구둣주걱 아저씨와 바이브레이터 박스를 안고 뒤따라가는 나, 이렇게 달랑 둘뿐이다.
구둣주걱 아저씨의 집은 이 모텔촌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모텔 건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건물 전면을 회색 타일로 도배해버렸다. 오래된 여인숙이나 동네 대중목욕탕 같은 포스다. 아지트 못지않게 낡고 오래된 건물이다. 깨진 유리를 비닐 테이프로 대충 붙여놓은 창문도 보인다. 1층에는 식당과 슈퍼, 2층에는 노래방, 3층에는 룸살롱이 세 들어 있다. 모두 광고가 생명인 업소들이라,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내걸린 업소 간판들이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구둣주걱 아저씨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희박한 일조량 때문에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진다. 조명도 켜놓지 않았다. 아무런 장비 없이 위험천만한 동굴 탐험에 뛰어든 기분이다. 보이는 건 걸을 때마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구둣주걱 아저씨의 몸통뿐이다. 그 구둣주걱 아저씨의 키가 어느 순간부터 탕탕, 망치로 못을 박듯 갑자기 줄어든다. 처음에는 공포물의 한 장면처럼 오싹했다. 알고 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밟아 내려갈 때마다 눅눅한 곰팡내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꽤 깊다. 한참을 내려가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습도만 점점 높아질 뿐이다. 어느새 뽀송하던 마음까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발밑에서 불쑥 문이 나타난다. 알루미늄 섀시에 올록볼록 불투명 유리를 댄, 높이가 낮고 폭이 좁은 문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 무척 친근한 느낌이다. 저런 문을 어디서 봤더라? 구둣주걱 아저씨가 열쇠로 문을 딴다. 찰카닥! 그 소리와 함께 번쩍, 기억이 되살아난다.
“화장실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건 화장실 문이다.
“들어와라. 내가 이런 데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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