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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23 09:15 수정 : 2014.12.23 09:15

강태식 소설 <86화>



룰루랄라 손 붙잡고 와서 후다닥 체크인 하고 방에 들어가는 연놈들은 여기 많이 와본 베테랑들이야. 제집 드나들 듯 편안한 마음으로 하룻밤 즐기다 가는 거지. 전날 본 커플을 다음 날 또 보게 되면,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저러지 말고 그냥 같이 살지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해.

하지만 이런 커플들은 긴장감이 없어요. 당연히 볼 것도 없고, 재미도 없지. 역시 초심자 커플이 등장해야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쌍방이 합의를 보고 와도 살금살금, 몰래몰래, 두리번두리번, 그걸 귀엽다고 해야 하나? 안됐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초심자라는 티가 팍팍 나. 이건 완전히 첩보 스릴러에, 배경이 모텔촌이니까 삼류 에로물이야. 그러다가 모텔 입구까지 도착하잖아. 그럼 들어가네 마네, 잠깐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자는 둥, 이럴 거면 여기까지 왜 따라왔냐는 둥, 엄마 아빠한테 죄송해서 못 들어가겠다, 계속 꼬리 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이게 무슨 타이어에 바람 빠지는 소리냐, 아무튼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어요. 하지만 결말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야.

잠깐 쉬었다 나오자. 오빠 믿지?

그래도…….

오빠 그런 사람 아니야. 오빠 못 믿어?

그게 아니라…….

팔짱 끼고 사이좋게 들어가든, 몸싸움 끝에 질질 끌려서 들어가든, 결국 들어가기는 들어가. 보는 입장에서도 참 다행이다 싶어. 풋풋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인생 선배나 이웃집 아저씨처럼 마음이 흐뭇했어. 옛날 생각도 나고 말이야. 하지만 나도 남자잖아. 솔직히 하고 싶어. 마누라까지 도망간 뒤라 여자 굶은 지도 한참 됐고. 모텔로 들어가는 커플들을 볼 때마다 자꾸 야한 상상만 하게 되는 거야. 여자를 보면 일단 벗은 모습부터 떠올라. 한창 혈기왕성한 청춘들인데, 저것들이 방에 들어가면 얼마나 핥아대고 빨아대고, 타고 태우면서 쑤셔대겠느냔 말이야. 신음하면서 몸부림치는 장면을 생각하면 딱딱하게 피가 쏠려. 몸에 달려 있는 물건이 통제가 안 돼. 너도 그 기분 이해하지?

솔직히 부러웠어. 여자와 함께 모텔로 들어가는 놈들이 말이야. 그놈들 대신 내가 대타로 들어가고 싶었어. 허리를 움직이고 단백질 총알을 밤새도록 몇 번이고 발사하면서 오랫동안 꾹꾹 참아온 번식본능을 한꺼번에 확 풀어버리고 싶었다고. 오빠 멋쟁이. 아침이 되면 밤새도록 함께 몸부림친 여자가 나를 보며 웃는 거야. 상상만 해도 황홀했지.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이야. 현실에서는 할 수 없으니까 오히려 더 괴로워. 그런 걸 상대적 빈곤감이라고 하나?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더라고. 매일 장전만 되풀이하고 있는 물건도 처치 곤란이었어. 시도 때도 없이 굶고 딱딱해지는 거야. 발사를 못 하고 늘 스탠바이 상태니까 계속 과열만 돼. 정말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물론 안 보면 그만이야. 하지만 그게 어디 그래? 그때는 사는 낙이 그것 하나뿐이었어. 안 보면 보고 싶고, 방금 봐도 또 보고 싶고. 몇 번은 이제 정말 안 봐야지, 결심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딱 한 번만 더 보자, 이러면서 계속 보게 되더라고. 여기 이렇게 앉아 차디차고 쓰디쓴 소주를 마시면서, 부러운 눈으로, 화가 난 얼굴로, 그러다 결국 마음까지 비참해져서는, 불빛으로 모여드는 나방처럼 쾌락과 환락을 찾아서 모텔촌으로 모여드는 연놈들을 지켜보게 되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그날도 난 여기에 앉아서 독한 소주 한잔으로 외로움을 달래며 모텔 입구에서 벌어지는 19금 드라마를 감상하고 있었지. 그날따라 베테랑 커플이 많았어. 룰루랄라 팔짱 끼고 재깍재깍 들어가는데, 이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그냥 심심하기만 해. 그래서 남아 있는 소주나 마저 비우고 일찌감치 내려가서 잠이나 자볼까 했지. 그런데 웬걸? 조금 있으니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모님이 새파랗게 어린놈을 옆구리에 끼고 저쪽 모텔 진입로에서 입장하고 계신 거야. 얼씨구! 딱 봐도 띠동갑 이상일세. 사실 그런 커플들은 보기가 좀 그래. 욕정에 굶주린 늙은 여자에 용돈 타 쓰는 젊은 남자 커플 말이야. 하긴 어린 여자의 몸이라면 환장하는 사장님에 용돈 타 쓰는 젊은 여자 커플도 마찬가지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솔직히 좀 민망하거든. 아무리 정성껏 비벼도 아름다운 그림은 안 나와. 냄새만 구려지고 앵글만 추해지지.

아무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돈으로 도배를 하고 있던 그 사모님, 분명히 어디선가 한 번은 본 여자였어.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한참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하고 있는데, 그 띠동갑 커플이, 저기 저 모텔 보이지? 저 모텔이 이 근방에서는 제일 비싸고 럭셔리한 모텔이거든. 딱 한 번 들어가봤는데 호텔인 줄 알고 깜짝 놀랐어. 아무튼 저 모텔로 후다닥 들어가는 거야. 분명히 아는 여자거든. 그런데 생각날 듯, 생각날 듯 생각이 나지 않아.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더만. 남은 소주를 마시면서 곰곰이 생각했어. 잠자리에 누워서도 머리를 쥐어뜯었고. 그러다 잠들었지. 생각 안 나면 뭐 어때? 이렇게 포기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띠동갑 커플이 그다음 날 또 나타난 거야. 얼마나 호되게 쪽 빨렸는지 새파랗게 어린놈 꼴이 말이 아니더만. 어깨는 축 처졌지, 다리는 후들거리지, 겁먹은 얼굴로 질질 끌려오는데, 고삐를 잡힌 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따로 없더라고. 척 팔짱을 끼고 있는 사모님은 전날도 싱글, 그날도 벙글, 어린놈 몸뚱이 빨아먹을 생각에 아주 좋아서 죽겠다는 얼굴인데 말이야. 어린놈이 참 안됐어. 모텔 문이 지옥문처럼 보였을 거야. 하지만 나야 제삼자잖아. 강 건너 불구경하는 기분으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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