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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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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 소설 <93화>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구둣주걱 아저씨 앞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통의 우편물이 날아왔다.
왜, 동네 문구점 같은 데서 파는 노란색 비닐 서류봉투 있잖아. 어느 날 문 앞에 그게 떨어져 있더라고. 발신인 이름도 없는 무기명이야. 우표도 안 붙어 있으니까 지역 우체국의 소인도 없고. 딱 봐도 그건 정상적인 단계를 거쳐서 배달되는 일반적인 내용의 우편물이 아닌 거야. 그래도 내 앞으로 온 거니까 안에 뭐가 들었나? 궁금하기는 하더만. 열기 전에 우선 꼼꼼하게 구석구석 만져봤어. 폭발물은 아닌 것 같더라고. 그래서 열어봤네. 궁금했으니까. 생각해보면 호기심 때문에 여러 사람 피 봐. 상자를 연 판도라도 그렇고, 사과를 따 먹은 이브도 그렇고. 나까지 그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넌 이 어르신의 레이더망에 딱 걸렸어.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까 몸조심해!
워드로 쳐서 A4용지에 인쇄한 거라 남자가 썼는지 여자가 썼는지도 모르겠더라고. 거기에 사진도 한 장 첨부해서 보냈는데, 그게 무슨 사진이었느냐 하면 말이야……. 내가 여기 이 옥상에서 저 아래 있는 불륜 커플을 향해 응징의 셔터를 누르고 있는, 정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장면을 절묘하게 포착해서 카메라에 담은 사진인 거야. 구도도 완벽해. 카메라에 얼굴을 대고 있는 내 모습과 막 모텔 입구로 들어가는 불륜 커플의 모습이 한 화면 가득 꽉 짜인 구도로 담겨 있었지. 사진의 포커스로 보면 촬영 방향은 오른쪽 측면, 촬영 각도는 이 옥상에서 대략 네다섯 개 층 위. 협박용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온 내 눈에는 그랬어.
그날 바로 확인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었지. 그런데 그게 만만치가 않더라고. 저기 오른쪽에 있는 저 모텔 건물 보여? 저 건물 옥상 정도면 어떨까? 오른쪽에 있고, 여기보다 네다섯 개 층쯤 높잖아. 하지만 그 뒤에 있는 건물을 봐. 역시 오른쪽에 있고, 우리가 있는 이 옥상보다 훨씬 높아. 그 뒤에도 그런 건물들이 수두룩해. 원거리 망원렌즈 하나만 장착하면 그 정도의 사진은 어디서나 찍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더라고. 그렇다고 저 많은 건물들을 죄다 뒤집어 까며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솔직히 엄두가 안 나더라고. 게다가 어디서 찍었는지 알아내면 뭐해. 범인이 나 잡아가세요,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떤 인간이 그랬는지 얼굴이 궁금해서 미치겠더만. 그런데 그것보다 궁금한 게 뭔지 알아? 이게 지금 뭐 하자는 플레인지, 왜 얼굴도 모르는 인간이 이런 개수작을 부리는 건지, 정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야. 목적은? 동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더라고. ‘항상 지켜보고 있’다고? 대체 왜? ‘몸조심’하라고? 날 걱정해주는 건가? 나중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니까.
일을 아주 열심히 하던데. 성실해. 돈도 좋지만 쉬어가면서 해라. 그렇게 계속 혼자서만 해먹으면 나중에 배탈 난다.
다음 날에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성한 A4용지 한 장과 첨부 사진 세 장이 내 앞으로 날아왔어. 물론 노란색 비닐 서류봉투에. 보낸 사람은 이번에도 무기명, 우표도 없고 우체국 소인도 없고. 전날과 동일한 인물이었어. 스스로택배가 분명한데, 언제 와서 문 앞에다 몰래 떨구고 갔는지 정말 미스터리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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