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96화>
무서운 인간이었어. 사진도 한두 장 보낸 게 아니더라고. 열 장이 넘어. 그걸 한 장 한 장 보고 있는데, 이건 확인사살을 당하는 기분인 거야. 너무 치밀하고 잔인하고 교활해. 게다가 머리까지 좋아. 어디를 어떻게 찌르면 상대가 무너지는지 정확하게 아는 작자였어. 공갈협박의 초절정 고수야. 전국 순위를 매겨도 세 손가락 안에 들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찔했어. 내가 그런 작자에게 걸렸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눈앞이 캄캄한 거야.
옥상에 올라가서 뭘 해볼 엄두조차 안 났어. 당분간은 일을 접고 집구석에 짱 박혀 지내는 게 상책이겠구나 싶었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잠잠해질 때까지 잠수해 있다가 다시 개업하면 그만이니까. 하긴 돌이켜보면 그동안 너무 앞만 보며 달려왔어. 일에 쫓기느라 몸을 돌볼 시간도 없었지. 잠시 동안 공백기를 가지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더라고.
그때부터 칩거생활에 들어갔어. 문만 걸어 잠그면 창문도 없으니까, 거기가 완전히 지하 벙커야.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어. 설령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해도 절대! 그런데 말이야. 그게 생각처럼 안 되더라고. 라면이라도 하나 사려면 슈퍼에 가야 하잖아. 뜨거운 물에 몸 담그고 싶을 때는 어떻고. 목욕탕도 밖에 있어.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가끔 술 생각도 나고 말이야. 게다가 지하는 공기가 안 좋아. 산책이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잠깐 나갔지. 정말 잠깐 나갔는데…….
“어이, 형씨! 이리 와서 나 좀 봐!”
건물 밖으로 나가자마자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누가 나를 부르더라고. 그때 그놈이었냐고? 아니, 처음 보는 놈이었어. 하긴 이놈이나 저놈이나 인상은 험악하지, 깍두기 머리에, 팔뚝에는 문신까지 새겨져 있었지만 말이야.
“저요?”
“요 옆에 있는 모텔이 우리 이종사촌 건데…….”
이번에도 뒷골목으로 끌려가서 정신없이 맞았어. 역시 개인적인 억하심정은 없다더만. 초면에 미안하게 됐다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 지금은 왜 나갔는지 기억도 안 나. 괜히 나가서 비 오는 날 먼지 날리도록 신 나게 얻어터진 거지. 자리에 누워서 끙끙거리며 진단해보니까 이것도 전치 십몇 주가 가뿐하게 나오겠는 거야.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더라고.
이번에도 귀하께서 구타당하시는 아픔의 현장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눈물을 훔치며 사진에 담아보았습니다. 어떠한 물리적 폭력 앞에서도 결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켜나가시는 귀하의 서슬 퍼런 인생철학을 보면서 저는 생각해봅니다. 귀하야말로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아닐까, 귀하야말로 비폭력 비협력을 목 놓아 부르짖는 대한민국의 간디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추후로도 타의 모범이 되는 귀하의 일거수일투족을, 귀하께서 남기시는 위대한 족적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지켜보며 본받을 각오이오니, 이 점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은 참 공손하게 잘해요. 하지만 이게 결국은 꼼짝 말라는 소리거든.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오면 곡소리 들으면서 제삿밥 먹게 해주겠다는 공갈협박이야. 정말 코너 끝까지 몰린 기분이더만. 맞을까 봐 무서워서 집 밖으로는 나갈 수도 없지, 그렇다고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자니 답답한 건 둘째 치고 먹을 것도 없지, 이건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가나 전부 천 길 낭떠러지야. 하다못해 쥐를 몰아도 빠져나갈 구멍은 터놓고 몬다는데, 이 작자는 그런 것도 없어.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하네 싶은 생각만 들더라고. 이게 사람 죽으라는 소리지 뭐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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