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97화>
그런데 사람이라는 동물이 참 이상해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당하면 당할수록 오기가 생기거든. 원하는 건 뻔해. 그래, 돈이야. 그냥 줘버리고 끝내자는 생각도 수도 없이 했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살아야 돈도 있는 거잖아.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이상하지. 이런 오기가 발동하는 거야. 절대 못 준다, 죽어도 안 토해낸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 버텼을 거야. 일주일 내내 정말 아무것도 못 먹고 쫄쫄 굶었어. 처음에는 천장이 빙빙 돌더라고. 배가 고파서 잠도 안 와. 나중에는 정말 이놈이고 저놈이고 모두 노랗게 보이더라니까. 그렇게 계속 물만 먹고 버텼더니 속도 쓰리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게 딱 죽을 것 같더라고.
택배? 배달? 나도 그 생각은 했지. 전화 한 통이면 치킨에 짜장면에 술도 한잔할 수 있는데 내가 그 생각을 왜 안 했겠어. 하긴 했는데 전화가 사용 정지야.
“고객님의 전화기는 사용자의 요청으로 당분간 송신이 불가능하오니 이 점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야 요청한 적 없지. 그 작자 짓이었어. 뭘 대체 어떻게 하면 남의 전화기를 사용 정지시킬 수 있는지 궁금하더만. 전지전능한 인간이었어. 마음만 먹으면 3차 세계대전도 일으킬 수 있겠더라고. 물론 신은 아니지. 악마라면 모를까.
아무튼 굶겨 죽이고 말려 죽일 작정인 거야. 이대로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살짝 문을 열어봤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지. 아무도 없으면 몰래 나가서 후다닥 아무거나 사가지고 들어오려고 했거든. 그런데 누가 계단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야. 입에서는 단내가 학학 풍기는데, 굶어 죽는 것보다 맞아 죽는 게 신속하니 고통도 덜할 것 같은데, 그래도 누가 보이니까 못 나가겠더라고. 어디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것 같고, 괜히 나갔다가 또 뒷골목 같은 데 끌려가서 죽도록 얻어터질 것 같고……. 아무튼 다리가 덜덜 떨리고 온몸이 오싹한 게 굶어 죽으면 죽었지 도저히 못 나가겠더만.
귀하의 용안을 잠깐 뵙고 그사이 부쩍 뼈가 드러날 만큼 피골이 상접해진 모습에 흐르는 눈물을 금할 길 없어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 보내드립니다.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의 몸으로 실험하시는 듯한 귀하의 헌신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귀하께서 단식에 들어간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던가요. 귀하야말로 대한민국의 간디다, 했던 말을 취소하렵니다. 오히려 간디가 인도의 귀하가 아닐는지요. 귀하께서는 진정한 비폭력과 비협력의 화신이십니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인내의 대마왕이십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며 귀하를 응원하겠습니다. 그럼 늘 무강하시고 화목하시길 바라오며…….
사진에는, 한 요만큼이나 열었을라나? 문틈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고 있는 내 얼굴이 찍혀 있더라고. 그 짧은 순간을,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늘 지켜보고 있다가 카메라에 담은 거야.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 정말 무시무시하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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