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99화>
뭐가 있어서 무서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무서운 거야. 멀쩡한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고, 가만히 있는 방바닥이 꺼질 것 같고……. 머릿속에 있는 나사가 빠진 것 같더라고.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지? 싶은 게 완전히 망가진 기분이더라니까. 작은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지, 뭐만 봐도 부르르 경기를 일으키지, 정신병자가 따로 없어요. 아무튼 한 방 제대로 된 공갈협박의 후유증이라는 게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고. 상상을 초월할 만한 위력이었지.
외출 같은 건 한동안 꿈도 못 꾸고 지냈어. 잠깐씩 식료품 사러 슈퍼에 다녀오는 게 다야. 하지만 슈퍼에 갈 때도, 라면 몇 개에 얼마, 통조림 몇 통에 얼마, 소주 몇 병에 얼마, 이렇게 미리 돈을 맞춰서 나갔지. 물건 고를 때도 불안해서 미칠 것 같은데, 거스름돈 계산하면서 시간이 딜레이돼봐. 그 자리에서 게거품 물고 눈 까뒤집으면서 기절했을 거야. 지하 단칸방으로 내려와서, 그 일 때문에 자물쇠 두 개를 더 달았거든. 이중 삼중으로 문을 걸어 잠가야, 밀어보고 당겨보며 단단히 잠겼다는 걸 확인해야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고 정신이 돌아오는 거야.
미쳐도, 이왕에 미칠 거면 말이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곱게 미치면 얼마나 좋아. 이건 미쳐도 아주 더럽게 미쳤더라고. 밖에만 나가면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게 이건 일상생활은 둘째 치고 계속 이러다가는 요단강 건너서 저승 구경하게 생긴 거야. 이건 아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도 살 둥 말 둥인데, 언제까지 나사 빠진 놈처럼 정신 줄 놓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결심했어. 일단 나가자, 나가서 부딪혀보자, 하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래도 문을 열 때는 용기가 필요하더라고. 솔직히 건물 밖으로 나가니까 겁도 났어. 다행히 사람은 그림자도 안 보이더만. 어이 형씨, 잠깐 나 좀 봅시다,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부르는 어깨도 없어. 막상 부딪혀보니까 별 게 아니더라고. 온도 좋고 습도 좋고 기분까지 딱 좋아. 단골 슈퍼 앞을 지날 때는 주인아줌마가 나와 있기에 큰 소리로 인사도 했어.
“안녕하세요?”
별일이네, 생전 말 한마디 없던 양반이……. 주인아줌마가 이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그래도 왠지 기분이 좋은 거야.
몸은 깃털처럼 가볍고, 발걸음은 족쇄에서 풀려난 듯 경쾌했지.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몇 걸음이나 갔을까? 널찍널찍하니 시야가 탁 트이는 대로가 나오더라고. 인도도 보이고 차도도 보여. 이게 얼마 만이냐,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니까 핑 눈물이 돌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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