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02화>
“공갈협박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공갈협박으로 극복하면 돼.”
공갈협박을 극복하는 길은 공갈협박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대가 없어서 공갈협박을 단련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야.”
좋은 스파링 파트너가 생겼기 때문이다. 살짝살짝 잽만 날려도 확실한 반응이 온다. 마치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는 기분이다. 물론 아쉬울 때도 많다. 좀 더 강한 스파링 파트너를 상대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밟아 올라가는 기본기 훈련 단계다. 무엇보다 자신감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불만은 없다.
“넌 참 좋은 스파링 파트너야. 너한테 공갈협박을 하면 자신감이 생겨.”
나는 구둣주걱 아저씨가 공갈협박을 날릴 때마다 자신감이 없어진다. 가드를 올려보지만 효과가 없다. 가드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구둣주걱 아저씨가 날린 공갈협박 펀치가 매번 안면에 적중한다. 코피가 흐르고 마우스피스가 날아간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좋아진 편이다. 한층 완화된 충격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구둣주걱 아저씨를 상대하는 동안 가드를 올리는 기술도 그만큼 향상된 모양이다.
“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정말 고마워.”
구둣주걱 아저씨가 나를 향해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씨익 웃는다. 마치 전 헤비급 세계 챔피언 맥스 베어의 실사 브로마이드 사진 같다. 그 맥스 베어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지, 아마.
“난 계속 싸워야 합니다. 여자들한테는 돈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맥스 베어가 사각의 링 위에서 상대 선수를 쓰러트린 건 돈과 여자 때문이었다. 구둣주걱 아저씨에게도 그런 게 있을까?
“난 그런 거 없어. 우선 그냥 최선을 다해서 버티는 거야. 뭐, 어떻게 버티느냐고? 그게 말이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아주 극적이에요. 계속 들어볼래?”
그 후로도 죽 지하 벙커에 틀어박혀 지냈지. 문을 이중 삼중으로 꼭꼭 걸어 잠그고 말이야. 가끔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살 때 말고는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어. 무서웠으니까. 하늘이 무너질까 봐. 땅이 꺼질까 봐. 매일 해롱해롱 술에 취해서 사실 잘 걷지도 못했어.
그러던 어느 날,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요. 다다닥, 급하게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나더니 끼익, 문이 열리고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문 잠그는 걸 깜빡한 모양이더라고. 아차 싶었지. 처음에는 도둑이나 강돈 줄 알고 깜짝 놀랐어. 그런데 화장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한참 있다가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나고. 남의 집에 들어와서 화장실을 사용한 걸 보면 도둑이나 강도는 아닌 것 같거든. 그래서 나가봤지. 양복까지 차려입은, 아주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더만. 시원한 표정으로 내 집 화장실에서 당당히 걸어 나오는데, 너무 황당해서 기가 막히는 거야. 이만큼 한잔 걸치셨는지 시뻘건 얼굴로 한다는 소리가,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너무 급해서 그만……. 실례했습니다.”
이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후다닥 내빼는 거야. 뭐, 급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날은 그렇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넘어갔어. 그런데 다음 날에도 다다닥, 누가 급하게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날은 문이 잠겨 있었어. 전날의 교훈도 있고 했으니까. 아무리 잡아당겨도 당연히 문은 안 열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문을 두드리면서 노크를 하데.
“똑, 똑, 똑! 안에 계세요?”
“예, 있는데요. 실례지만 누구세요?”
택배나 등기가 올 시간은 아니었어. 그렇다고 누가 찾아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젊은 여자 목소리야.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나? 이런 시간에? 그것도 젊은 여자가? 그래서 누구냐고 물어본 건데 한참 동안 대답이 없어. 그렇다고 가기를 하나, 문 앞에 서서 계속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거야. 어쩔 수 있나. 다시 물어보는 수밖에.
“누구신데 그러세요?”
“저…… 제가요……. 너무 급해서 그러거든요……. 죄송하지만 빨리 좀 나오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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