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1.19 09:22 수정 : 2015.01.19 09:22

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강태식 소설 <103화>



그래, 문만 보고 화장실인 줄 안 거야. 기분? 당연히 더럽지. 어이도 없고. 여기가 이래도 내 집은 내 집이니까. 그런 오해는 아무리 젊은 여자라도, 아무리 당장 쌀 것처럼 급해도 여기 사는 이 사람의 자존심이 용서를 안 해. 하지만 초면이라 막말을 할 수도 없고, 알아듣기 쉽게 좋은 말로 설명해줬지.

“여기는 화장실이 아니거든요. 사람이 사는 일반 가정집이거든요.”

그랬으면 말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를 했네요, 정중하게 사과하고 나서 얼른 다른 화장실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하는 거잖아. 그게 맞는 건데, 이 아가씨가 갈 생각은 안 하고 발만 동동 굴러요.

“저, 아저씨……. 정말 죄송한데……. 제가요…… 지금 너무 급하거든요……. 화장실 한 번만 쓰게 해주세요. 오죽 급하면 이러겠어요. 이렇게 부탁드려요, 아저씨…….”

“내가 댁을 언제 봤다고 문을 열어줍니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괜히 문 열어줬다가 칼 들고 덤비면 어떡해. 요즘 같은 세상에는 남의 사정 봐주는 것도 겁나서 못 해요. 그래서 쌀 테면 싸봐라, 문은 절대 못 열어준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있는데, 밖에 있는 여자가 갑자기 우는 거야.

“흑, 흑, 아저씨.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흑, 흑, 돈 드릴게요. 돈…….”

마침 생활비도 바닥났는데 돈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귀가 번쩍 뜨이더라고.

“정말요?”

“흑, 흑, 드려요. 정말 드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문 좀…….”

그래서 문을 열었더니 정말 젊은 아가씨야. 얼굴은 하얗게 질렸지, 눈은 퉁퉁 부었지, 손으로 쥐어뜯었는지 머리가 산발이더라고. 술도 한잔 걸친 모양이야.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가는데 술 냄새가 확 풍기더만.

쾅 문이 닫히고, 찰칵 잠금장치가 걸리자마자, 사악 바지 내리는 소리, 콸콸 오줌 싸는 소리, 그리고 한참 후에 촤악 변기에 물 내리는 소리가 이어졌어. 후유, 안도의 한숨 소리를 끝으로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아까는 정말 지옥의 고통을 맛보는 얼굴이었거든. 그랬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잠든 아기처럼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열어주길 잘했다, 역시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하는 거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마음까지 따사로워지더라고.

“정말 감사드려요. 그리고 이건…….”

여자가 지갑에서 뭘 꺼내기에 봤더니, 물론 나도 거금을 바란 건 아니었어.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는데, 다 죽어가는 걸 살려놨는데 달랑 1,000원짜리 한 장은 너무하잖아. 얼굴은 반반하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아주 못 쓰겠더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의 마음가짐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어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 한마디 남기고 휭하니 가버리는데, 저기 잠깐만요, 불러 세울 수도 없고. 어떡해.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좋게 보내드려야지.

“다음에 또 오세요.”

그렇게 1,000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고 나니까,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더라고. 당연히 황당했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게 또 사업 아이템인 거야. 사업이라는 게 그래. 자본도 좋고 기술도 좋지만 그게 다가 아니거든.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 가지고 창업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리고 그렇게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고. 그래 이거다! 머리에 전원이 들어오는 기분이었어. 물론 한 번에 펑 터지는 대박 아이템은 아니야. 하지만 차곡차곡 확실하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생계형 아이템은 충분히 돼.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어. 유료 화장실 사업 말이야.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강태식의 <가드를 올려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