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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1 09:27 수정 : 2015.01.21 09:27

강태식 소설 <105화>



“저기요……. 휴지가 없는데……. 휴지는 얼마예요?”

사업을 할 때는 말이야,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해. 돈이 되는 대부분의 아이디어가 거기에서 나오거든. 휴지는 정말 생각도 못 했어. 휴지를 상품화하겠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없었던 거야. 그런데 가격 문의가 들어오니까 이것도 아이템이다! 탁, 무릎을 치게 되더라고. 그래서 아예 두루마리 휴지를 치우고,

부드럽고 위생적인 일회용 고급 티슈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3,000원에 모십니다.

이렇게 쓴 문구를 잘 보이는 곳에다 떡하니 붙여놨지. 이게 예상외로 또 벌이가 되더라니까. 시중가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양심적인 가격이야. 싸고 안 닦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요즘 사람들이 어디 그래. 지폐로도 닦고, 양말로도 닦고, 팬티로도 닦는데 일회용 고급 티슈가 3,000원이면 이것도 거저지, 거저야.

“아저씨, 혹시……. 생리대는 안 팔아요?”

처음에는 안 팔았지. 하지만 한때는 중소기업을 경영했던 몸이야. 자랑은 아니지만 경험도 풍부하고, 거기에서 나온 상황대처능력도 뛰어나. 고객의 눈높이가 기업의 존망을 판가름 짓는 생명선이라는 것도 알고 말이야. 그래서 생리대도 바로 들여놨어.

민감한 피부를 위한 순면 여성용품도 판매합니다. 개당 5,000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이런 것들을 이렇게 쌓아두고 팔 게 아니라 보기 좋게 진열해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데. 내가 또 추진력 빼면 시체거든. 바로 진열대를 구입해서 화장실 입구에다 배치했지. 견본품을 진열하고 그 밑에 가격표를 붙이니까 백화점 매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폼이 나더라고. 자기가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골라서 쓰는 거니까 고객들도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좋아하고 말이야. 아무튼 그 매대가 공 꽤나 들인 작품이라니까.

그래, 바이브레이터도 그 매대에다 진열해놓을 생각이야. 여기가 모텔촌 한가운데라 콘돔이나 피임약 같은 상품은 불티나게 팔리거든. 바이브레이터도 어쩌면 찾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몰라. 잘 팔리면 좋은 거고, 안 팔려도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일단 내가 진열은 해놓을게. 이런 게 있다고 소개도 하고. 아무튼 잘 팔렸으면 좋겠다.

지금은 체인점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어. 번화가에 자리만 잘 잡고 들어가면, 누가 알아? 대박 날지. 최소한의 공간만 확보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라 임대료 부담도 그만큼 적어. 유지비라고 해봐야 수도세나 전기세 정도가 전부고. 거기다 관리만 신경 써서 철저하게 해주면, 이게 사회복지와 국민행복에 이바지하면서 수입도 확실하게 올릴 수 있는 사업이거든. 그게 잘되면 1호점, 2호점 하는 식으로 계속 분점을 내면서 사업을 키워나가는 거야. 장학재단도 건립하고 중소기업들도 후원하면서,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 거니까 기부에도 힘쓰고.

어때, 멋지지?

그때가 되면 매장 매니저 할 사람도 필요해질 거야. 난 네가 마음에 드는데, 넌 어때? 나중에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그날은 구둣주걱 아저씨랑 참 많이도 마셨다.

“자고 가. 취객 전문 털이범한테 당할지도 몰라. 음주보행이라는 게 음주운전만큼 위험한 거야. 비틀비틀 가다가 차에 치여봐. 인생 종 치는 거 한순간이야.”

술기운 때문일까? 대걸레의 통역이 없는데도 구둣주걱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혹시 적응이 된 걸까? 아무튼 평소와 다름없는 공갈협박인데도 왠지 모닥불 앞에서 불을 쬐고 있는 것처럼 온몸이 훈훈해지는 기분이었다.

“자고 가라니까. 자꾸 어른 말 안 듣는다.”

구둣주걱 아저씨,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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