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09화>
“오빠, 잘해줄게. 놀다 가.”
처음에는 이래저래 끌려다니느라 바빴다. 언니들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호객 행위를 하는 언니들이 두 명, 세 명씩 몰려나와 몸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우리 집에는 과일이 싱싱해. 그런데 과일만 싱싱한 게 아니야.”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오빠, 우리 집으로 가.”
질질 끌려가면서 잠깐 눈을 감았다. 상황이 급박할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 돈 없는데요.”
돈 없는 거지는 풀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괜찮아. 외상으로 하면 돼. 돈은 없어도 그건 달고 있을 거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고객은 여자다. 이런 언니들이라면 팔 수 있지 않을까? 먹구름뿐인 하늘에서 한 줄기 햇빛이 비치는 느낌이었다.
“저 여기 놀러 온 거 아닙니다.”
“그럼?”
“장사하러 왔습니다.”
효과가 있었다. 언니들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이 오빠 재미있네. 물건이 뭔데?”
물건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고객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체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물건 팔러 왔다며? 물건부터 봐야 사든 말든 하지.”
“김 양아, 너무 그렇게 윽박지르지 마라. 물건만 계속 작아지겠다.”
안면으로 계속 카운터펀치가 날아와 꽂히는 기분이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냥 도망쳐버릴까? 계속 마음이 약해졌다. 등 뒤로 길이 열려 있었다. 전속력으로 뛰면 따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아쉽지만 개시는 다음 기회에……. 처음부터 너무 거친 고객들에게 걸렸다. 적극적인 건 좋지만 감당이 되지 않았다. 급하게 몸을 돌렸다. 땅을 박차며 힘차게 스타트를 끊었다. 단거리 선수처럼 팔도 크게 흔들었다. 그렇게 10미터쯤 달렸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마음을 놓았다. 옆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기서부터는 천천히 걸으며 거친 숨을 골랐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무언가 허전했다. 앗, 가방! 바이브레이터가 들어 있는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기억을 더듬었다.
“다른 것도 싱싱해.”
그 언니가 가방 끈을 잡아끌던 생각이 났다. 다시 몸을 돌렸다. 출발지점을 향해 땅을 박차며 힘차게 달렸다.
“어머, 이런 물건을 팔러 다니는 저질 오빠가 다시 왔네.”
언니 하나가 바이브레이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작동 스위치를 누르자 모터가 돌면서 바이브레이터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와, 움직인다!”
어머 징그러워, 비명을 지르는 언니에, 나도 한번 해보자, 전원을 켰다 껐다 하며 까르르 웃는 언니에,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그 틈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방을 회수할 수 있었다.
“최신 회전형입니다. 진동형도 있습니다. 인체에 해롭지 않은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회전 속도나 진동의 강도를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만족과 기쁨을 드립니다. 성인용품 전문점에서 정가로 판매되고 있는 정품입니다. 여기서는 단돈 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모시고 있습니다.”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서 미리 준비해온 멘트를 읊었다. 거울을 보면서 얼마나 연습했는지 모른다.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마지막 멘트를 읊을 때는, 정말 하면 되는구나, 스스로가 장하고 대견해서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개시는 못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만큼이나 해냈다는 자랑스러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 가슴에 바이브레이터를 조몰락거리고 있던 언니가 쏴악 찬물을 끼얹었다.
“싫어. 이거 그냥 내가 압수할래.”
개시를 못 하는 거랑 물건을 압수당하는 거랑은 차원이 달랐다.
“이런 야한 물건은 용서가 안 돼. 그러니까 압수!”
노상에서 칼만 안 든 강도를 만난 기분이었다.
“돌려주세요.”
“안 된다면 안 돼. 이 물건은 압수야.”
언니는 막무가내였다. 바이브레이터를 등 뒤로 감춘 채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고집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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