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10화>
“샘플도 몰라? 이 오빠가 장사할 줄 모르네. 고기를 잡으려면 먼저 떡밥을 쳐야지. 내가 우리 가게에서 언니들이랑 상품 체험해보고 확실하게 입소문 내줄게.”
샘플 같은 건 모른다. 장사할 줄 몰라도 좋다. 고기를 잡으려고 여기에 온 것도 아니다. 게다가 바이브레이터 하나로 여러 명이서 상품 체험을 한다니, 안 된다. 떳떳하게 한 개씩 구입해서 당당하게 혼자서 사용하란 말이다! 마음은 그랬다. 억지로라도 빼앗고 싶었다. 하지만 이쪽은 한 명, 저쪽은 하나 둘 셋…… 대략 열 명쯤 된다. 머릿수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싫어요. 그냥 줘요.”
계속 말로 사정했다.
“남자가 쩨쩨하게 왜 이래. 바이브레이터 하나 가지고.”
언니의 말에 빠직, 이마에 핏줄이 섰다. 그건 그냥 바이브레이터 하나가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내 밥그릇이었다. 그걸 몰라주는 언니들이 미웠다.
“경찰 부르기 전에 돌려줘요.”
“와, 더럽고 치사하다!”
여기저기서 우우, 야유가 날아들었다.
“경찰을 부른대.”
“저 오빠 너무한다.”
밥그릇을 돌려받기 위해서다. 야유쯤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오면 나도 그냥은 못 줘.”
바이브레이터를 손에 든 언니가 와일드 업, 마운드에 선 피처처럼 자세를 잡았다. 이쪽으로 던지려는 것 같았다. 잘못해서 바닥에 떨어지거나 벽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물건이 고장 나버리고 만다. 나는 자세를 잡고 받을 준비를 했다. 절대 놓치면 안 돼!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느낌이었다. 동점, 9회 말 만루 상황. 투 아웃 풀 카운트에서 피처의 공을 기다리는 포수의 심정이었다.
“언니 받아!”
피처가 견제 플레이를 했다. 공의 방향은 홈이 아니었다. 일루 쪽이었다. 한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바이브레이터. 일루수 언니는 기본기는 물론 운동신경도 좋았다. 안정적인 자세로 바이브레이터를 캐치한 다음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꽝! 가게 문이 닫혔다.
“오빠 포기해.”
포기할 수 없었다. 잠깐 이제 그 바이브레이터와도 안녕이구나,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밥그릇이 날아간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나는 일루수 언니가 사라진 가게 문을 두드렸다.
“내놔요.”
처음에는 노크만 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야, 내놔. 내 거란 말이야. 당장 돌려줘!”
효과가 있었다. 덜컥, 가게 문이 열렸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온 건 일루수 언니가 아니었다.
“어떤 새끼가 지랄하는 거야?”
나보다 머리 하나쯤 더 큰 남자였다. 떡 벌어진 어깨에 기골이 장대한 모습, 옛날에 태어났으면 장군감이었다. 인상도 험악했다. 죽 찢어진 눈과 두툼한 입술, 주먹만 한 코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몸에 열이 많은 태양인 같았다.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 차림이었다. 잊을 수 없다, 어깨에 새겨져 있던 코브라 문신.
“저 새끼야?”
코브라 문신이 턱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언니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완전히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먼. 하여간 요즘 새끼들은 맞을 일이 없어서 뭐가 똥인지, 뭐가 된장인지 도통 배울 기회가 없어요.”
코브라 문신이 한 발, 두 발 다가오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를 꺾는데, 우두둑 기왓장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우두둑, 우두둑, 계속 기왓장이 무너져 내렸다. 찍, 이빨 사이로 침도 뱉었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많이 뱉어본 솜씨였다. 가만히 있다가는 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될 것 같았다. 바이브레이터는 잊기로 했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밥그릇도 이런 곳에서 죽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재빨리 몸을 돌렸다. 다행히 퇴로가 열려 있었다. 코브라 문신이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건 눈으로 확인했다. 이쪽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지만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무작정 뛰었다. 코브라 문신은 따라오지 않았다. 등 뒤에서 목소리만 들려왔다.
“야, 이 새끼야! 거기 안 서.”
집에 와서 강소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개시를 못 했기 때문에 라면과 계란은 사지 않았다. 번화가나 아파트 단지에서 팔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지하철을 돌아다닐 용기도 나지 않았다. 결국 만만한 고객은 언니들밖에 없었다. 거의 팔 뻔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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