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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30 10:01 수정 : 2015.01.30 10:01

강태식 소설 <112화>



씩씩, 코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코브라 문신이 등장한 건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었다. 여전히 반바지와 민소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신발은 운동화였다.

“이 새끼가 정말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너 지금 누구 허락받고 이런 데서 이런 물건 파는 거야?”

등장하자마자 욕부터 했다. 바이브레이터가 든 가방을 냅다 발로 걷어찬 뒤,

“이 새끼 이거, 말로 해선 안 되겠구먼.”

내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흔들어댄 건 그다음이었다.

“너 때문에 언니들이 바이브레이터 가지고 장난치느라 2차를 안 뛰잖아, 2차를. 요즘 불경기라 안 그래도 장사 안돼서 죽겠는데 누구 쪽박 차는 꼴 보려고 그래? 너, 어떻게 책임질 거야?”

처음에는 주먹이, 곧이어 발길질이 날아왔다. 사정 같은 건 봐주지 않았다. 맞는 부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길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어도 마찬가지였다. 주먹과 발길질은 장마철 장대비처럼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퍽! 퍽!

그렇게 10분쯤 정신없이 맞았을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욱신욱신 안 쑤시는 데가 없었다. 옆구리에 통증이 밀려오고, 어디가 터졌는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얼굴도 너덜너덜 만신창이였다. 거울 같은 걸 안 봐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코가 깨지고 한쪽 눈이 찢어진 것 같았다. 혀로 더듬어보니 이도 몇 개 흔들거렸다. 지옥에 끌려가서 100년쯤 벌을 받고 난 기분이었다.

“어때, 맞으니까 정신이 좀 맑아지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웅웅, 그렇다고 대답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 때문에 본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몇 대 때리는 걸로는 변상이 되지 않아!”

코브라 문신이 내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이 나왔다. 거기에는 그날의 매상 전액과 은행 인출 카드가 들어 있었다. 현찰을 압수한 코브라 문신은 은행 인출 카드를 요리조리 살펴본 다음 이렇게 물었다.

“여기 얼마 들었어?”

내 전 재산이 들어 있었다. 매일 확인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얼마가 들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렇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웅웅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됐어. 확인해보면 알겠지. 비밀번호?”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통장에 있는 돈을 압수당하면 정말 한 푼도 남지 않는다. 다행히 밀린 공과금은 이미 해결했다. 하지만 내일부터 당장 생활비가 없다. 나는 웅웅거리며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여기서의 웅웅은 비밀번호를 말해줄까 보냐, 정도의 의미였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고개를 저을 때마다 공중으로 흩어졌다.

“나, 이 새끼가 아직 덜 맞았나.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알거든. 아저씨는 매를 부르는 상이야. 때리고 싶게 만들어. 뭐, 좋아. 비밀번호는 천천히 말해도 돼. 나도 이번 기회에 운동도 좀 하고 스트레스도 좀 풀지, 뭐.”

그때부터 다시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왔다. 처음 맞는 것도 아닌데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아팠다. 누가 상처 부위에 소금을 뿌리는 기분이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질끈 눈을 감았다. 세상살이란 연기처럼 덧없는 것. 자, 나와 함께 가세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포에서 삿갓까지 올 블랙으로 통일한 저승사자였다. 웅웅 고개를 저으며 저항했다.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비밀번호 네 자리를 말해주고 말았다.

“아니면 알지? 한번 빡 돌면 나도 내가 제어가 안 돼. 아저씨 칼침이라고 맞아본 적 있어?”

수지침이라면 몇 번 맞아봤다.

“맞아보면 알아. 편안해져.”

칼침 같은 걸 맞고 편안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비밀번호를 불렀다. 아까와는 숫자 두 개가 다른 번호였다.

“이봐라, 이봐라. 역시 매를 부르는 관상이야.”

퍽퍽, 몇 대 더 맞았다.

“다음에 나를 보잖아. 그럼 그날이 제삿날인 줄 알아.”

코브라 문신이 가버린 뒤에도 한참 동안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오빠, 거기서 뭐 해? 울어?”

하지만 아는 언니들이 지나다니는 바람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끙, 통증을 참으며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저만치에, 코브라 문신이 냅다 발로 찬 가방이 떨어져 있었다. 그걸 어깨에 메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사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자꾸 압수당한 돈이 생각나 가슴이 쓰라렸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마저 무겁기만 했다. 식칼 아줌마에게 받은 모래주머니 두 개가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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