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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2 09:14 수정 : 2015.02.02 09:14

강태식 소설 <가드를 올려라> ⓒ이현경



강태식 소설 <113화>



눈앞이 깜깜했다. 밤이 된 줄도 모르고 계속 걷기만 했다. 아무도 없는 주택가 골목에 멍하니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구름이 낀 것 같았다. 별 같은 건 없었다. 달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캄캄한 밤하늘이었다. 하지만 여기보다는 평화로워 보였다.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칠 일도, 그러다가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다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아,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산다는 건 왜 이리도 힘겨운 걸까? 이런 생각을 할수록 발목에 차고 있는 모래주머니 두 개가 내게는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그때 내 눈에는 희망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모래주머니처럼 무거운 절망뿐이었다. 저 멀리에서 별도 없고 달도 보이지 않는, 하지만 왠지 여기서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할 것 같은, 깜깜한 밤하늘이 손짓하고 있었다.

힘들지? 이리 와.

툭, 한쪽 모래주머니를 풀어 바닥에 버렸다. 5킬로그램이 빠져나가자 붕, 몸이 공중에 뜨는 느낌이었다. 이제 남은 건 모래주머니 하나뿐이었다. 이것마저 풀면, 그때는 슬프고 힘겨웠던 지상의 생활과도 영원히 바이바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참 잘 버텨왔어, 뜨거운 눈물을 훔치며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했다. 아지트에서 만난 멤버들의 얼굴도 하나하나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안녕!

“어머, 자기야. 저 사람 미쳤나 봐. 양말을 벗으면서 울고 있어.”

조용한 주택가 골목 어디선가 겁먹은 듯 바짝 긴장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고개를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쌍의 커플이 이쪽을 바라보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정말이네.”

“자기야, 저 사람은 양말을 벗는 게 슬픈가 봐.”

“그러게. 정말 울고 있네.”

집이 그 근처인 모양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바래다주는 것 같았다.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다정해 보였다.

“자기야, 나 무서워. 우리 돌아가자.”

“걱정 마. 내가 있잖아. 우리 자기는 내가 지킬 거야.”

“하지만 미친 사람은 무서운걸.”

“괜찮아. 우리의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어.”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커플이 다가왔다.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자 사람 한번 사귀어보지 못하고 살았다. 먹고사는 게 힘들다 보니 연애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당연히 팔짱 같은 걸 끼고 다정하게 돌아다녀 본 적도 없었다. 둘만의 행복한 내일을 설계한다는 것도 바다 건너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자연스럽게 결혼 같은 건 포기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삶을 예찬하면서 독신생활의 외로움을 견뎠다. 구속과 억압을 규탄하면서 고독한 현실을 외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커플들을 보면 부러웠다. 부러운 만큼 화도 났다. 다정해 보일수록 더 그랬다. 핑크빛 사랑을 나누고 있는 커플들은 특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날 주택가 골목에서 마주친 커플도 그랬다. 팔짱을 끼고 나타나다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모래주머니를 양말로 오해한 것도, 인생의 기로에 서 있는 이 몸을 미친 사람 취급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 발, 두 발 겁먹은 커플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갈 때는 이런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빽, 고함을 질러버려? 정말 미친 척하고 다리를 걸어버려? 다행히 성숙한 인격과 꾸준히 함양해온 소양으로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랬잖아. 우리의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자기야, 멋져. 사랑해.”

쪽,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뜨거운 소리가 들렸다. 역시 용서가 안 되는 커플이었다. 입 맞추기 전에 응징할 걸 그랬다고,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저 멀리 사라져가는 커플을 바라보며 때늦은 후회를 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모래주머니를 다시 찼다. 질끈, 발목에 끈을 동여매며, 이대로 날아가버릴쏘냐, 각오를 다졌다. 행복한 사람들이 미웠다. 밝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도 미웠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했다.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울면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영차, 기합을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보란 듯이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건 사랑의 힘이 아니라 오기가 뿜어내는 어둠의 힘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다시 일어나 걸었다. 하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캄캄한 건 여전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걸어도 행복의 파랑새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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