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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4 09:21 수정 : 2015.02.04 09:21

강태식 소설 <115화>



갑자기 사람이 보고 싶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명, 두 명, 멤버들의 얼굴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마지막으로 아지트에 가본 게 언제였더라? 꿀꺽, 소주 한 모금을 삼키면서 생각했다. 바이브레이터를 팔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 점 실익도 없이 발품을 팔고 돌아다닌 게 벌써 3개월째다. 아지트는 여전할까? 멤버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불효자처럼 마음이 짠해졌다.

그동안은 전화가 와도 일이 바쁘다는 핑계만 댔다. 다음에 간다고 얼버무리며 뒤로 미루고, 뒤로 미루고 해왔다. 아지트에 가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라는 생각을 하며 소홀하게 대해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면 그때마다,

“그럼 다음번엔 꼭 와! 모두들 보고 싶어 해.”

같이 놀자며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던 스마일 영감님의 목소리. 어제는 그 목소리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아, 정말 모두들 보고파라! 한 모금, 두 모금, 소주를 마실 때마다 내 안에 있는 그리움도 그렇게 한 모금, 두 모금, 부피를 늘려갔다.

소주 세 병을 다 마신 다음 자리에 누웠다. 잔고가 바닥난 통장도, 몇 달째 밀려 있는 공과금도, 그래서 어둡기만 한 현실도, 해가 뜨지 않을 것 같은 내일도,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어쩌면 강소주 세 병보다 더 독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몰랐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거라곤 온통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그 속에서 멤버들의 그리운 얼굴이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 댓바람부터 집을 나섰다. 멤버들이 있는 아지트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동안 뭐 했어? 구둣주걱 아저씨가 물으면 먹고사노라 바빴죠, 너스레를 떨 생각이었다. 아무튼 잘 왔다며 환한 웃음으로 반겨줄 스마일 영감님의 얼굴도 떠올랐다. 대걸레와 식칼 아줌마도 여전할까? 그리운 얼굴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모처럼 둥실둥실 가슴이 부풀었다. 하지만 아지트에는 아무도 없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그랬는지 끼익끼익,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샌드백만 보일락 말락 쓸쓸한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고 있었다.

“어, 어디 갔지?”

바닥을 뒹굴고 있는 구둣주걱 아저씨도, 샌드백을 두드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식칼 아줌마도 보이지 않았다. 녹색 추리닝을 입은 영감님이 매트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아서 소리쳐 불러보았다.

“영감님, 저 왔어요.”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끼익끼익, 샌드백 흔들리는 소리와 부웅,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전부였다.

“어, 어디 갔지?”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아지트에 머물면서 멤버들을 기다렸다. 좀처럼 흐르지 않는 시간과 사투를 벌이며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바닥을 뒹굴며 몸부림도 치는가 하면, 그러다 지치면 잠깐씩 졸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창가에 기대서서 5층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스마일 영감님이 활짝 웃는 얼굴로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타날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아지트를 향해 걸어오는 구둣주걱 아저씨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식칼 아줌마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100미터 전, 99미터 전, 98미터 전……. 식칼 아줌마의 보폭을 떠올리며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카운트다운이 끝나도 식칼 아줌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해가 진 다음부터는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오른 대걸레를 기다렸다. 5층 창가로 내다보이는 도심의 야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수많은 불빛을 하나 둘 셋 몇 번이나 헤아리며, 버스에서 내려 100미터, 99미터, 98미터……. 그리고 마침내 저기 보이는 골목 모퉁이를 돌아 짜잔 나타날 것 같은 대걸레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자정이 지나고, 새벽 1시, 2시, 시간이 흘러가도, 주택가가 어둠에 잠기고, 몇 안 남은 아파트 단지의 불빛마저 하나둘 꺼져가고, 그래서 가로등 불빛만이 아무도 없는 거리를 외롭게 비출 때도 내가 기다리는 대걸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지트를 뒤덮고 있는 침묵과 어둠, 그 속에 녹아 있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낯설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멤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어,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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