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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5 09:09 수정 : 2015.02.05 09:09

강태식 소설 <116화>



다음 날은 모텔촌 한복판에 있는 구둣주걱 아저씨의 집을 찾아갔다. 유료 화장실의 영업개시 시간은 오후 6시. 그 시간에 맞춰 길을 나서다 보니 어느새 뉘엿뉘엿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도보로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장거리 코스. 이제 막 불이 들어온 가로등들이 몇 걸음당 한 개씩 줄지어 서 있었지만, 퇴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모래주머니 두 개를 발목에 차고, 비에 젖은 벼 이삭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벅터벅 한 시간이나 걸리는 쓸쓸한 거리를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었다. 그렇게 구둣주걱 아저씨가 사는 반지하에 도착해서,

“똑, 똑!”

문을 두드렸지만, 왜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 걸까? 불길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는데, 몇 번 더 노크를 해보고, 나중에는 쾅쾅 주먹으로도 두드려봤지만 집채만 한 정적은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 저예요.”

슬쩍 문을 당겨보니 그대로 열렸다.

“아무도 안 계세요?”

불도 꺼져 있었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으로 벽을 더듬어 겨우 스위치를 올렸다. 구둣주걱 아저씨의 자랑이었던 진열대만이 예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매대 위에는 일회용 티슈와 여성용품,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비치해둔 샘플용 바이브레이터 한 개. 변한 게 없었다. 구둣주걱 아저씨가 거기 없다는 사실만 빼면 모든 게 예전 그대로였다.

“어, 어디 갔지?”

와르르, 가슴이 먼저 무너져 내리고, 그다음에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30분쯤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을까? 엄마 잃은 아이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왈칵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매대에 있는 휴지를 뽑아 코도 풀고 눈물도 닦았다. 30분 후에 무너진 몸을 일으켰다.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한번 무너져 내린 가슴은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었다.

대걸레는? 식칼 아줌마는? 어디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찾아갈 방법도 없었다. 연락처도 알아두지 않았다. 아지트에 가면 샌드백에 구멍을 내기도 하고, 느닷없이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그래서 고마운 줄 몰랐다. 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줄 알았다. 연락처 정도는 알아둘 걸…….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어떤 후회든, 후회를 할 때면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라는 걸, 그래서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걸,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거웠지만,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는 그 멀고도 쓸쓸한 길 위에서, 문득 머리 위에 켜져 있는 가로등을 바라보며, 실례합니다, 잠깐 길을 내줄 때 말고는 계속 눈부신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정말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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