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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6 09:09 수정 : 2015.02.06 09:09

강태식 소설 <117화>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느새 주택가 골목이었다. 밤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떠 있고, 여기저기에 뿌려놓은 듯 별도 간간이 반짝이고 있었다. 왠지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당신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장난치지 말고 빨랑 내려와. 내가 딱 셋까지만 센다.”

밤하늘에 대고 손나발을 불었다. 그나저나 이런 공갈협박은 구둣주걱 아저씨의 전매특헌데……. 프레스로 눌러놓은 것 같은 구둣주걱 아저씨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하-아-나!”

스마일 영감님이, 이런 들켜버렸네, 슬쩍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타날 것만 같았다.

“두-우-울!”

식칼 아줌마의 화려한 공중 발차기와 예리한 정권 지르기가, 샌드백을 두들길 때마다 팡, 팡! 기분 좋게 울려 퍼지던 파이팅 넘치는 소리가 저기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적에게 등을 보이는 비겁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식칼 아줌마. 아주 멀리 갔나 보다. 내 목소리가 닿지 않을 만큼.

“세-에-엣!”

야, 대걸레! 너 정말 계속 이러기냐? 빨랑 안 나올래?

셋까지 다 셌다. 밤하늘로 날아간 목소리만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남은 건 휘영청 밝은 달과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별 무리와, 하지만 대부분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네-에-엣!”

셋 다음은 미련이었고,

“여-얼-하나!”

열 다음부터는 인연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이었으며,

“쉬-흔-하나!”

쉰 이후로는 남은 오기 하나로 숫자를 셌다. 천이든 만이든 상관없었다. 나타날 때까지 계속 셀 생각이었다.

“어떤 새끼가 한밤중에 숫자를 세고 지랄이야?”

옆 골목으로 장소를 이동해 계속 숫자를 셌다. 백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백하나를 세면서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이백을 세고 삼백을 세도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어머, 자기야. 저 사람 미쳤나 봐. 혼자 숫자를 세면서 울고 있어.”

예전에도 한번 봤던 커플이었다. 그때 나는 모래주머니를 벗으면서 울고 있었다. 그때처럼 화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위의 현장을 엄마에게 딱 걸린 여드름 만발 남학생처럼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어디로든 숨고 싶었다. 쥐구멍 같은 게 보였다. 하지만 내 몸이 너무 컸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시련의 상처를 가슴속에 담은 여인처럼 어딘지 모를 저 먼 곳으로 하염없이 달렸다.

“어머, 저 사람 봐. 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도망치고 있어. 어쩜, 너무 불쌍하다.”

아! 정말, 세상이고 인생이고 전부 개그에 코미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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