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20화>
생활에는 돈이 든다. 아지트에 있던 라면 몇 봉지와 얼마 안 되는 정부미를 연료로 해서 육담을 집필했다. 제목은 ‘욕망의 종잣돈―우리의 사랑은 처음부터 알몸이었다’. 바로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막장이라는 혹평을 들으며 시리즈의 2화에서 중도 하차해야 했다. 다른 수입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구둣주걱 아저씨의 유료 화장실이었다.
깨끗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도착하자마자 청소부터 했다. 바닥을 밀고 변기를 닦고 진열대 위에 쌓여 있던 뿌연 먼지도 반짝반짝 털어냈다. 6시부터 영업을 시작했지만 개시를 한 건 저녁 8시쯤이었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싸구려 양복 차림의 남자가 얼큰하게 취해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장사의 기본은 친절이라고 생각했다.
“어서 오십쇼!”
웃는 얼굴로 맞이하며 힘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어? 주인이 젊어졌네. 활기차고 좋구먼. 아무튼 요즘은 젊은 사장님들이 장사를 더 잘한다니까.”
단골 같았다. 얼굴을 익혀두기로 했다.
“오늘은 작은 거 한 방.”
선불로 5,000원을 받고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아저씨, 여성용품 한 개만 주세요.”
여자 손님에게 생리대를 팔고 또 5,000원을 받았다.
“형씨, 이것도 파는 거야?”
첫날부터 운이 좋았다. 어깨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바이브레이터도 하나 팔았다. 만 원을 받았다.
새벽 3시에 영업을 마치고 아지트로 향했다. 한 것도 없이 피곤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택시를 잡아탔다.
잠깐 편의점에 들러 소주 두 병을 사고,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종이 어묵 한 봉지를 안주로 골랐다. 아지트 바닥에 앉아 한 잔, 두 잔, 얇은 어묵을 오물오물 씹으며 소주를 마셨다. 구둣주걱 아저씨의 유료 화장실 덕분에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생활도 안정될 것 같았다. 어둡기만 했던 내 쥐구멍에도 드디어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는 것인가! 눈물겨울 만큼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이상했다. 한 잔, 두 잔, 소주는 비울수록 차디차고 쓰디쓰기만 했다. 구둣주걱 아저씨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스마일 영감님은, 식칼 아줌마는, 대걸레는……. 모두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그녀는 기억의 사진첩 속에서 걸어 나온 듯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가로수 푸른 잎들이 낙엽으로 뒹굴고,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가는 가을 하늘이 사람들 머리 위로 파랗게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잊은 걸까? 아니면 내 모습이 변한 걸까? 무심한 듯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아련한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노란색 꽃무늬 치마가 바람에 날려 하늘거렸다. 잊지 않았다고, 보고 싶었다고, 언제나 그리워해왔다고, 그녀에게 달려가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건 무책임하기만 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 때문도, 그녀와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건널 수 없는 시간의 강 때문도 아니었다. 아!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무지개처럼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그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그녀, 식칼 아줌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파 같은 걸 잔뜩 담은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고, 헐렁한 슬리퍼는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 질질 끌렸지만, 오랜 세월 축지법을 연마해온 그녀였기에 일반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빨랐다. 두 팔을 앞뒤로 흔들며 최대한 피치를 올려봤지만, 머리가 띵해질 때까지 죽기 살기로 쫓아갔지만, 식칼 아줌마와의 거리는 갈수록 벌어지기만 했다. 그렇게 뛰면서 목 놓아 불러봐도,
“아줌마! 잠깐만요. 아줌마!”
어느새 골목을 돌아 모습을 감춘 식칼 아줌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릎에 손을 짚고 어깨로 숨을 몰아쉬었다. 허파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식칼 아줌마를 보낸 안타까움에 마음이 더 아팠다.
돌아와요, 식칼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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