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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12 09:20 수정 : 2015.02.12 09:20

강태식 소설 <121화>



식칼 아줌마와 마주친 그곳에서 지난 사흘 동안 잠복 대기를 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선글라스를 끼고 신문을 펼쳤다. 허락도 없이 빌린 영감님의 녹색 추리닝을 입고 공병을 수집하며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교통체증의 원흉인 도로변 불법주차 차량과 시민들의 보행에 불편을 끼치는 대형 입간판 등은 훌륭한 지형지물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몸을 숨기기가 쉬웠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잠복 대기였다. 미숙한 점도 많았고, 그래서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범인은 반드시 범행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시간이었다. 신문을 들고 있으면 팔이 아팠고, 대형 입간판 뒤에 쪼그려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렸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야?”

공병을 줍다가 그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어르신에게 멱살을 잡힌 적도 있었다. 하지만 뭘 하든, 그 사흘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식칼 아줌마는 왜 도망친 걸까?

저기 그녀, 식칼 아줌마가 걸어온다. 오늘도 장바구니를 든 손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새 파마를 새로 했는지 두피에 착 달라붙은 머리가 마치 검은 헬멧을 쓰고 있는 것처럼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깎아놓은 듯 각진 턱에 박력이 넘치는 사각형 얼굴은 예전 그대로다.

금세 사정권 안으로 진입한다. 부를까? 아니, 부르면 지난번처럼 도망칠지도 모른다. 두 번 다시는 이쪽 길을 이용하지 않을 테고, 한 번뿐인 이 기회도 결국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고 만다. 한민족의 자랑인 은근과 끈기를 발휘하며 사흘씩이나 기다려왔다. 그렇게 찾아온 기회를 한순간에 날려버릴까 보냐, 주먹을 불끈 쥐며 급한 마음을 다독였다.

이 순간을 위해 지난 사흘 동안 훈련도 많이 했다. 아무나 지나가는 행인 한 명을 정해 식칼 아줌마라고 생각했다.

“아줌마!”

앞에서 부를 때와 뒤에서 부를 때의 반응을 관찰했다. 앞에서 부를 때는 반응이 빨랐다.

“저 아줌마 아니거든요.”

반면 뒤에서 부르면 몸과 고개를 돌리는 만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무방비 상태라 접근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사흘 전 이 자리에서 했던 실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칼 아줌마의 반응은 일반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빨랐다.

소지품을 갈취해서 발목을 묶는 아이디어도 떠올려보았다. 행인을 상대로 직접 실습을 해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대신 장바구니를 든 주부를 발견하면 보폭이라든지, 장바구니가 흔들리는 템포, 장바구니와 몸 사이의 간격 등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물가가 치솟는 요즘이다. 물건 몇 개 사면 들고 나간 돈이 순식간에 바닥나버린다. 그렇게 채운 소중한 장바구니를 쉽게 포기할 주부가 과연 있을까? 식칼 아줌마의 발목을 확실하게 묶어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장바구니를 빼앗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일반인이라면 걱정할 게 없지만, 식칼 아줌마는 한때 《태장기공》을 연마한 무당 3대협의 리더였다. 소중한 장바구니에 손을 대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이성을 잃은 식칼 아줌마가 주먹을 날린다면, 몸에 익힌 무공을 본의 아니게 사용한다면, 아! 돌아보면 눈물이 날 만큼 한 많은 이 내 인생도 그때 가서는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몸싸움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 식칼 아줌마의 장바구니에 손을 대는 건 죽음을 부르는 짓이다. 아쉽지만 장바구니는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다른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도 행인을 상대로 실습을 했다. 눈치채지 못하게 뒤를 밟았다. 남자 행인을 선택해 훈련의 강도도 높였다.

“당신 뭐야?”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했다. 하지만 훈련을 거듭할수록 요령이 생기고 자신감도 붙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식칼 아줌마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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