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22화>
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라타는 식칼 아줌마. 몇 번인지 번호를 확인했다. 9-3번 버스. 안양 방면이었다. 배차 시간은 물론 운행 코스까지 암기하고 있었다. 버스가 발차하는 걸 확인한 다음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어디까지 가세요, 손님?”
“저 버스를 따라갑시다.”
“예?”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든 식칼 아줌마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선글라스를 쓴 상태에서 재빨리 신문을 펼쳐 들었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일단 되는 대로 동네 구멍가게에 들어갔다.
“뭘 사시게?”
“껌 한 통 주세요.”
훈련을 하는 동안 미행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도 생겼다. 미행의 에이비시는 동화와 위장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의 눈을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행을 하다 보면 노출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노출의 방식이다.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별개의 행위다. 사람이 인식하는 부분은 눈으로 본 것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에 몸을 숨기면 된다. 미행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주변의 사물과 동화하기 쉬워진다. 못 견디게 껌이 씹고 싶다고 스스로를 설득해보자. 거기서 위장은 끝난다. 이미 당신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길바닥에서 뒹구는 과자 봉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동안, 식칼 아줌마가 연립주택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슷하게 생긴 연립주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죽 늘어서 있었다. 식칼 아줌마가 사는 곳은 그중의 하나였다. 여기저기 이불 빨래가 널려 있고, 꽃을 심은 화분들이 베란다 곳곳에 놓여 있는가 하면, 어디서 된장찌개를 끓이는지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고, 보지도 않는데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당신이 내 생모였어? 막장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현관에 있는 우편함에서 고지서 용지들을 수거한 식칼 아줌마는 계단 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경계심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생활인의 동선이었다. 미행이 따라붙은 걸 꿈에도 모르는 눈치였다.
식칼 아줌마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우편함을 체크했다. 고지서 용지나 전단이 없는 우편함은 한 곳뿐이었다. 306호! 3층 복도 끝에 있는 집이었다.
“딩동! 딩동!”
버튼에 팔분음표 두 개가 그려진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세요? 라는 확인 절차도 없이 스르르 문이 열렸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올 줄 알았다는 듯, 열린 문 저쪽에 식칼 아줌마가 서 있었다. 깜짝 놀라 휘둥그레진 시선도, 나 같은 건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살인 주먹도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왔으면 들어와라.”
식칼 아줌마는 침착한 표정과 담담한 목소리로 나를 초대했다.
“커피하고 녹차가 있는데, 어떤 걸로 마시겠나?”
해가 잘 드는 집이었다. 장판과 벽지는 오래됐지만, 매일 청소를 하는지 깨끗한 느낌이었다. 한쪽 벽에는 대형 결혼사진도 걸려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식칼 아줌마의 모습이 낯설어 보였다. 그 옆에 턱시도 차림의 돌주먹도 서 있었다. 너무 평범한 인상의 남자라 깜짝 놀랐다.
“차가 싫으면 음료수도 있다.”
식칼 아줌마가 이렇게 반듯한 가정집에 살 줄은 몰랐다. 왠지 믿고 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른 걸 마시고 싶었다.
“소주는 없어요, 아줌마?”
“난 이제 붕이 아니다.”
“예?”
“추가 생겼다.”
“추요?”
“그래. 내려놓을 수 없는 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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