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24화>
“그 인간이 그렇게 된 것도 전부 너 때문이다.”
이번에는 구둣주걱 아저씨가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그게 왜 내 책임인지 식칼 아줌마의 설명을 들어볼 차례였다.
구둣주걱 아저씨에게도 샌드백이 있었다. 그 샌드백을 상대로 매일 공갈협박 훈련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샌드백이 사라졌다. 샌드백이 바이브레이터를 팔러 돌아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구둣주걱 아저씨는 먹고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샌드백을 말리고 싶지 않았다. 자기한테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구둣주걱 아저씨는 섀도복싱을 시작했다.
“섀도복싱이 뭐예요?”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가상의 적을 만든 다음 그 적을 상대로 연습을 하는 걸 섀도복싱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그림자 권투다. 그림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림자의 공격을 피하기도 한다. 구둣주걱 아저씨도 그림자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밤길 조심해라.”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그림자는 구둣주걱 아저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백전백승. 그것도 모두 화려한 케이오승이었다. 덕분에 기량도 많이 향상되었다. 그즈음 구둣주걱 아저씨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상태가 나빠졌다. 맛이 간 거 같았다.”
그림자 때문이었다. 너무 쉬운 그림자를 상대하면 훈련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구둣주걱 아저씨는 그림자의 레벨을 높였다. 한 단계, 한 단계, 레벨을 높여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림자의 주먹이 구둣주걱 아저씨의 급소를 때렸다.
“높아만 가는 하늘 아래 말이 살찌는 계절입니다. 귀하께서도 부디 밤길 조심하시길 바라오며…….”
그림자가 날린 한 방은 강력했다. 구둣주걱 아저씨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귀하의 전도에……. 귀하께서 하시는 일마다……. 귀하의 가정과 직장에…….”
지나친 욕심이 불러온 참사였다. 그림자는 이미 괴물로 변해 있었다. 레벨을 조정하려 했지만 통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귀하의 존안을 직접 뵈오니……. 귀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속 깊이 새기며……. 귀하께서 계신 높은 곳을 우러러보는 하루하루가…….”
구둣주걱 아저씨의 사정 같은 건 봐주지 않았다. 결국 코너까지 몰리고 말았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그림자의 주먹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구둣주걱 아저씨는 비명을 질렀다.
“으악!”
공포에 질린 눈으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구둣주걱 아저씨를 이번에도 스마일 영감님은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식칼 아줌마 역시 못 본 척 샌드백만 두드렸다. 하지만 미안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이 미웠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샌드백만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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